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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Dec 31. 2024

10년 만에 면접을 봤다

기분 좋은 떨림

첫 아이를 가진 2015년을 마지막으로 나의 회사생활은 끝이 났다. 16년에 첫째를 낳고 18년에 둘째를 낳았으니 육아를 하느라 몇 년간은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 손으로 언제까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거창한 고집은 없었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를 2-3년 키워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언제 아이가 아플지 모르니 늘 대기조처럼 내일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좋은 직업이 있었다면이야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일을 했을 텐데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나는 언제 또 내가 일을 할지 무슨 일을 할지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게 딱 10년 전, 2015년이었다. 


그러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갈 때쯤 시동이 걸렸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시간이 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성격 덕분에 책도 쓰고 강의도 다니게 되었다.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않았고 직장도 이제 다시 들어갈 수 없으니 내 길은 이제 내가 개척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 오래도록 고민을 하다 나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나갔다. 그 시작이 21년이었으니까 일에 손 놓은 지 6년 만에 내 이름을 여기저기 들이대며 나라는 사람의 쓰임을 하나둘 쌓기 시작했다. 


책을 썼으니 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 글들 덕분에 하나둘 강의가 들어왔다. 간간이 들어오는 강의는 기관에서 먼저 제안이 와서 진행하기에 취소가 되는 경우가 없었다. 글쓰기 강사로 섭외가 왔으니 그쪽에서 어떤 글쓰기를 원하느냐에 시간대나 요일을 알려주면 그 니즈에 따라 나는 수업계획서를 꾸미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가서 성의껏 수업을 진행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내년 초에 잡혀있던 2개의 강의가 모두 취소되었다. 하나는 최소 수강생 인원이 1명 모자라서, 또 하나는 다른 강사의 수업계획서를 더 받아보라는 상사의 의견이 있어서 보류된다는 것이었다. 말이 보류지, 수업이 2월에 시작인데 지금 이렇게 말을 한다는 건 내가 진행할 확률이 적어졌다는 걸 의미하기에 내 안에서 지웠다.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강의를 3년 동안하고 있지만 수업이 취소된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공방 수업과는 달리 강의는 고정수입이 보장된다. 1회성 수업도 있지만 대부분이 4회에서 12회까지, 최소 1달에서 3달까지도 강사료가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크지 않은 금액이라 해도 고정비라는 게 얼마나 고마운 건지, 원데이 수없과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이 있다. 그것이 2개나 갑자기 흔들리고 보니 위기감이 확 생겼다. "아효" 한숨을 쉬고 있다가 알았다. 또 다른 방향을 찾고 시도해 볼 타이밍이 왔구나,라는 걸.





아이를 키우며 제일 어렵고도 두렵고 가지고 싶었던 것이 그럴싸한 자기소개였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 말고 몇 년 만에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 말고 예전에 무슨 일을 했었다는 지난 사실 말고. 현재 내가 나로서 하고 있는 생각과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삶을 스스로 꾸리며 애쓰고 있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기소개, 시작하세요."

"저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글쓰기 수업 100회 이상을 진행한 강사입니다."


어제 10년 만에 본 면접에서 이렇게 내 소개를 하고 시작했으니 꿈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될까. 

누군가 앞에서 내 소개를 하는 일은 강의를 시작할 때도 이루어지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과 평가를 하려고 듣는 사람은 전혀 다른 대상이기에 설레면서도 떨렸다. 기분 좋은 떨림. 든든하게 가방에 챙긴 내 2권의 책과 함께 면접을 마쳤다.


지난 4년 동안 쌓아놓은 경험으로 조금은 다른 업을 해보려고 움직이는 중이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는 것만으로 감사하겠다 싶은 마음으로 서류를 넣었는데 서류 통과 문자가 하나둘 도착하고 이제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탈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1군데만이라도 합격하면 좋겠다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시작했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나만의 업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렇게 어딘가에 소속이 되려 애쓰는 지금이 아이러니하지만, 경험 또한 나에게 축적되어 또 다른 일을 해낼 나에게 힘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두렵고 걱정되만 그냥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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