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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an 03. 2023

밤에 쓰는 러프한 글 뭉치

어떻게든 쓰기

1. 관계 디톡스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면 디톡스를 한다고 한다. 삶에서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나 자신도 돌아봐야 하지만, 내 주변도 돌아봐야 한다. 의외로 어딘가 잘못 맞춰진 관계들이 나를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 

나는 N년 이상의 관계를 이따금 마무리한 적이 있다. 그들은 흔히 말하는 나의 청춘이었고 나의 기도였으며, 나의 이유였다. 일련의 이벤트들로 틀어진 관계는 분노에서 좌절로, 좌절에서 푸념으로, 푸념에서 후회로, 후회에서 단념으로 이어졌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어느 누구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부재된 존재들을 생각하며 다양한 결론을 내린다. 보고 싶다, 마주치고 싶지 않다. 여전히 그립다, 내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분법적인 사고는 편협하지만, 이분법적인 관계는 꽤나 생산적인 느낌도 든다. 유지하고 싶은 관계, 없애버리고 싶은 관계. 늘 새로운 관계를 맞이할 수 있는 사회지만 굳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되나 싶기도 한 것이 사회다. 이미 엮인 관계도 충분하다. 오히려 덜어내야 하는 것일지도. 






2. 의심 없는 행복

단어마다 주는 신뢰의 무게가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종종 재밌어서 저마다 무게 추를 달아보곤 한다. 저울에 저마다 단어를 올려 무게를 재어보다 보면, 나에게 가장 무거운 단어는 '행복'이다. 이 단어만으로도 주는 신뢰감은 늘 묵직했다. 왜냐면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진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차디찬 경영 용어들 속에서 인지한 '행복'은 참 낯설었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얼마 동안을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내 삶과 이질적인지, 내 입에도 올리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나의 팍팍한 삶 속에 행복이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행복은 나에게 큰 신뢰를 주는 단어이다. 아무것도 아닌 문장에 행복을 추가하면 근사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행복을 추가하면 다채로워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행복에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행복 자체는 완전한 무게 추를 이루는데, 행복을 마주하는 자들이 자꾸 의심한다. 정말 행복한 것이 맞냐며, 이것이 행복이냐며 저마다의 질문으로 행복을 의심한다. 때로는 행복을 마주하는 것에 있어서 대담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것처럼. 

오랫동안 '행불행은 선택'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여기저기 써놓고 볼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행복을 선택해야지!'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불행을 선택하지 말아야지!' 






3. 오로지 사랑으로

교사를 왜 그만뒀냐는 질문에 나는 늘 멋쩍게 웃으며 '제가 사랑이 많이 부족해서요'라고 답해왔다. 듣기에 멋들어져 보일 수 있으나 나는 정말 그랬다. 내가 7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은 교육은 오로지 사랑으로 가득한, 가능한 일이었다. 

25살의 내가 사랑이 가득했다면, 사랑이 가득 찼다면 교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넘치는 사랑을 나누며 여전히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을까? 사랑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수치화 시키기에도 좋아서 매년 사랑의 가뭄에 나 자신이 고달팠을지도. 이러나저러나 나는 사랑 때문에 교사를 그만뒀을 것 같다. 

혼잡해진 삶을 재정렬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랑뿐이다. 서로만 아는 얼굴과 목소리와 말투. 그런 것을 특권으로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사랑뿐이다. 상대방에게 나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는 것 또한 사랑뿐이다. 불분명한 것들을 분명하게 선 긋는 것 또한 사랑뿐이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사랑뿐이다. 오로지 사랑으로 해내는 일들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주고받음으로써 완전해지지만, 그 시작은 한 쪽의 일방적인 속도다. 그러니 모두가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오로지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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