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위대한 식사를 상상하며
이상주의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상상에 폭 빠질 때가 있다. 가볍게는 ‘저 사람이랑 사랑에 빠진다면’부터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면’과 같은 발칙한 상상까지.
내 상상의 대상은 주로 더 나은 세상이고, 매우 유토피아적이다. 그래서 혼자서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할 힘이 부족하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많은 이상주의자는 동시에 염세주의자가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무의식 중에 끄덕이지 않았는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면 덜 실망하기 위해서라도 상상을 멈춰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길래 궁금해서 같이 살고 있다. 같은 동네에서 마을을 이루어 산다.
이 사람들은 일상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대안을 상상해서 삶의 촘촘한 순간에 녹인다.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는 성을 붙이지 않고, 결혼 대신 혼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우유 없이 치즈를 만든다.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상상의 산물이며 모든 철학은 상상의 결과다. 늘 변화의 시작에는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초들이 농기구를 들고 동학 혁명을 일으킨 것도, 총을 든 군인 앞에 광주 시민이 당당하게 맞선 것도, 평범한 대중들이 광화문에 모인 것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함께’ 상상할 때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같은 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현실이 되기 쉬운 법이다. 어쩌면 내가 상상하는 것들이 너무 크더라도 함께하면 이룰 수 있겠다.
내가 바라는 건 완벽하고 거대해서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비겁한 사람은 되기 싫다. 실제로 내가 ‘더 나은 세상’을 체감하는 곳은 꽤 가까웠고 적어도 두세 사람이 있었다. 상상은 현실로 나타날 때 그 가치가 더없이 발휘된다.
게으른 이상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비슷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삶에 맞닿아 있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야겠다. 우리 내일 만날 때 쓰레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위대한 저녁 식사를 해보자. 함께라면 우리의 상상은 그 어떤 것이라도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