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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수 Oct 08. 2022

기후운동보다 중요한 것

청소: 소진되지 않는 운동에 대하여

기후운동할 시간에 방이나 청소해라

 기사 댓글을  적이 있다. 아마 기사 본문은 기후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겠지. 나는  댓글이 악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깥일이  중요하다며 살림은 놓치고 있던  안의 가부장을 마주한 고마운(?) 댓글이었다. 실제 기후운동을 한다는 핑계로  방은  더러웠고 누군가 대신 치워주지 않으면 점점 처참해지는 지경이 되었다.  댓글 사건을 계기로  삶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그렇게  독립을 결정했다.


당시 내게는  하나의 선택지만 있었는데, S 언니네 빈집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언니의 전세대출 이자를 내가 월세로 내면 됐다. 보증금도 없이 월세 7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지만 한때 바퀴벌레가 엄청 많았다는 소문을 듣고 거의  달을 머뭇거렸다. 가기엔 겁나고 남아서 부모와 지내자니 앎과 삶의 괴리가 커질 뿐이고. 언니가 집을 오래 비운 탓에 다행히 벌레는 없었다. 이제부터  손에 달렸다는 생각으로 머리카락 보일라 깔끔하게 산다. 청소의 명분에는 상상 속의 무시무시한 존재가  비율 차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청소를  때면 나를 소중하게 살피고 돌보는 느낌이 든다.


혼자 사는 집은 구석구석이 내 방이고, 방은 내 마음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방이 어지러울 땐 내 마음이 어지럽다는 것이고 방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과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면 아침에 벗어놓은 잠옷이 가만히 앉아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안 치우면 아무도 치워주지 않는 집을 바라보며 이렇게 또 스스로를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방을 청소하면서 느낀 점은 기후운동 같은 의제 중심의 운동만큼 내 삶의 운동, 즉 일상에서 가치를 구현하는 운동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각의 메커니즘이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 변화되어야 비로소 의제에 뛰어드는 운동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지속 가능하다.


누군가가 의제라고 부르는 것에 반응하며 소진되는 운동은 이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방 청소는 미루면서 세상을 바꾼다고? 그동안 분노를 동력으로 움직였던 내 운동은 순간적으로 뜨거운 열을 뿜지만 차가운 세상에 닿으면 바로 꺼지는 불이었다. 이제는 미지근함과 따뜻함 사이에서 사랑으로 오래 이어나갈 삶의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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