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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수 Nov 05. 2022

배운 대로 사는 삶

자기 전에 세수하고 바를 거리를 찾는데 책상 구석에 있던 달팽이 크림이 보였다. 군대에 있는 남동생이 첫 휴가 때 사온 선물이다. 평소 동생이랑 막역한 사이도 아니고 연락도 안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참 나.


습관적으로 연민에 빠져서 그런지 우리네 인생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갈 수 있는 본가에 동생은 정해진 날에만 올 수 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김밥을 해준다. 아빠는 퇴직 전에 기사 자격증을 따려고 퇴근 후에 매일 공부를 한다.


녹록지 않은 삶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눈물이 났나 보다. 내 곁에는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에 걸린 벗들도, 정체 모를 불안에 압도되는 벗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질문한다. 그리고는 ‘나부터 잘 살면 된다’는 답에 이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 사는 인생이란 배운 대로 사는 삶이다. 물론 배우는 것도 힘들고 삶에 녹여내는 것도 힘들다. 그동안 학교 밖에서 배운 것들이 산을 이루었는데, 더는 한 걸음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산이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안온한 둥지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이대로 괜찮다며 넘어서길 주저했다. 꽤 오래.


그렇지만 한 발 내디디면 산은 더 가까워지고 어느새 내가 기대하던 어딘가에 닿게 된다. 배우면 언제 넘어지는지 알아차릴 수 있고, 걸으면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근육이 붙는다.


지금은 배운 대로 살기 위해 집중할 때다. 나는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있고, 상처받는 날에는 배웠던 공식 중 하나를 꺼내 적용한다. 머리로 알기만 하면 소용이 없다.


어떤 작가는 ‘이게 아닌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을 때 사람은 가장 힘들어진다’고 했다. 머리의 영역과 마음의 영역을 좁힐 때 비로소 평안이 깃든다.


인생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풀어야 할 때마다, 배운 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어서 기억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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