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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Nov 18. 2022

뉴욕에서는 가을에...

뉴욕 마라톤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직장 생활할 당시의 일이었다. 회사의 주인인 사장실에 잠깐 들어갈 일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사무실에는 각종 조각상, 그중에는 아름다운 여성의 나체 조각상도 있었다. 함께 간 General Manager가 나더러 눈짓하며,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 보란다. (왜요?) 나더러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 보란 말도 이상했지만, 하여튼 그 이유도 궁금해서 화장실 금장식의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어두워도 워낙 금장식 많아서 화장실이 훤할 정도였다. 화장실 안의 변기며 테이블 등이 모두 금으로... 아니 어쩌면 금도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금으로 되어있는 변기와 방은 난생처음 보았다. 옛날 왕궁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단풍이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출근하니, 그리스 사람인 General Manager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는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원래 그리스인들은 참으로 다혈질이다. 대체로 소란스럽고, 호들갑을 많이 떠는 편이다. (그 꽃다발은 도대체 누구한테 주려고 들고 서 있을꼬?) 그 매니저가 어제 벌어졌던 일에 대해 무용담 하듯 떠들었다. 어제도 꽃다발을 들고 센트럴 파크에 들어가려다가 그만 경찰로부터 제지당했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오늘 회사에서나 전달하게 되었다며... 


드디어 마피아 두목이나 타고 다닐 듯한 검은색의 긴 리무진이 도착했다. (일상생활에서 무슨 재미로 저런 긴 리무진을 혼자 뒷좌석에 타고 매일 출퇴근하는지 모르겠다) 암튼, 나이는 50대이고, 야위고 자그마한 키의 언제나 말이 없고 조용조용한 유대인 사장님께서 도착하고 운전사가 후다닥 차 문을 열어드렸다. 사장님께서 들어서니, 전 직원이 손뼉을 치고, General Manager가 대표로 꽃다발을 증정하며, 어제 전해드리려 했는데, 공원에 들어가지도 못했노라고 변명을 시끄럽게 떠들며, '완주를 축하드립니다'라고 한다. (완주?)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사장님의 활짝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완주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또 센트럴 파크에는 왜 들어가지도 못했는지 그때는 이해를 못 했었는데... 최근에서야 그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뉴욕의 가로수들이 예쁜 노란색을 띠게 되면, 뉴욕시에서 어김없이 치르는 행사가 하나 있다. 뉴욕 마라톤이다. 뉴욕시에 있는 5개 보로를 모두 거치며 뛰는데, 완주자만도 5만 명이 넘는, 그러니까 마라톤으로는 세계적인 아주 큰 행사이다.  


마라톤이 끝나고 일주일 뒤인 지난 주말에, 센트럴 파크에 가 보았다. 남녀노소, 센트럴 파크 내에서 달리기 하는 사람이 왜 그리도 많은지... 아마도 그들은 일 년 뒤에 있을 뉴욕 마라톤 대회에 모두 참가하려고 일 년 전부터 저렇게들 열심히 연습하는 것일까? 마라톤에는 참가하고 싶다고 아무나 금방 받아주지를 않는단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작은 달리기 대회, 그리고 Half 마라톤 등에서의 실적이 있어야 간신히 일반인들이 뛸 수 있는, 그것도 Wave 1에서 Wave 5까지 있으니, 기록적인 달리기에 대한 기대는커녕, 참가하는 문턱의 턱걸이도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5개 보로를 모두 돌고는 마라톤의 맨 마지막 코스는 센트럴 파크이다. 마라톤 코스임을 표시하는 푸른 페인트 선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어보았는데, 전체 마라톤 코스로 보아서는 정말 얼마 안 되는 아주 짧은 거리인데도, 내가 실제로 걸어보니, 2시간가량(카메라 촬영하느라 천천히 걸어서) 소요되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이 마지막 코스를 '이제는 다 왔다!'며 안도하면서 신나게 뛰어가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을 TV에서 보아왔던 것을 떠 올려보니, 마라톤의 전체 코스는 정말로 긴 것이다. 얼마나 길까?  

궁금하기도 하고,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올려볼 요량으로 며칠에 걸쳐서 아직도 파란색 페인트 자국이 남아있는 그 마라톤 전 코스를 자동차로 또는 도보로 다니며 촬영해보았다. 우선 스타트는 내가 사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스태튼 아일랜드에서는 동네를 거치지 않고, 베라자노 브리지(브루클린과 걸쳐있는)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 세계인들에게 생중계되는 TV에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동네 풍경은 안 비춰준다. 


내가 매일 출퇴근하면서 건너 다니는 베라자노 브리지는 참으로 아름답다. 매일 그런 광경을 보고 사는 것에 나는 감사할 정도이다. 뉴욕 일대에는 높은 지역이 없다 보니 현수교인 브리지의 중간에 이르면 그 일대에서는 제일 높은 지역이다. 마침 해가 뜨는 일출 광경과 마주치게 되면 더 없는 장관이 연출되는 곳인데, 마라토너들은 그 장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멀리 왼쪽으로는 맨해튼의 마천루가 보이고, 그 사이에는 Upper Bay의 뉴욕항에 있는 큰 화물선들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Lower Bay를 통해 멀리 대서양으로 나가는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베라자노 브리지를 건너면 브루클린이 나오는데, 그 브루클린의 4번가 도로가 참으로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다. 브루클린과 퀸스의 경계선상에 있는 플러스키 브리지가 바로 뉴욕 마라톤 코스의 딱 중간 지점이란다. 높낮이가 없는 뉴욕이지만 그래도 오르막길인, 힘든 코스는 브리지, 특히 퀸스보로 브리지가 아닐까 싶다. 큰 배들이 밑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길고 높이 세워진 현수교가 뉴욕 마라톤에서는 아마 가장 힘든 오르막길이다. 그리고는 또 계속 이어지는 긴 코스로는 맨해튼에서 브롱스로 가는 1번가와 그리고 브롱스에서 내려가는 5번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완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마라톤 코스를 촬영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뉴욕에 살면서, 언제부턴가 뉴욕 마라톤에 나도 한번 꼭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로 들어가 있었는데... 그동안 얼마나 바삐 살았는지, 꿈만 꾸다가, 이미 백발이 다 되고 말았으니, 완주의 꿈은 영원히 꿈으로만 남게 되는가 보다.  


마라톤은 그동안에는 TV를 통해서만 보다가,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난생처음으로 직접 구경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세상은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많이 조직화되어있었다. 그리고 마라톤에 직접 참여해서 달리거나, 또는 응원하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마라톤 때문에 어쩌면 베라자노 브리지는 막혀있을 것 같아서, 페리를 타고 섬을 빠져나갈 계획을 세웠다. 페리 터미널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는 페리를 타고 맨해튼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엇?) 터미널 근처에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길이 원천 차단되었고 대신에 버스들만 들락거린다. 알고 보니, 그 많은 선수는 맨해튼에서 페리를 타고 스태튼 아일랜드로 들어오고 그 선수들을 실어 나르느라 버스들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신히 입성한 페리 터미널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들어오는 페리는 선수들로, 나가는 페리는 마라톤 구경하고 응원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이다. 차를 안 가지고 맨해튼으로 들어갔으니, 오랜만에 전철도 타보았다. 전철 안에서 시계를 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라톤의 선두 그룹을 보려면 마지막 코스인 센트럴 파크로 직접 가 보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센트럴 파크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내고(자본주의 사회이니까) 티켓을 미리 구입한 사람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콜럼버스 서클을 돌아 길 건너에서라도 보려고 해도, 이미 2중 3중의 경찰 철책이 멀찌감치 처져있고, 그곳에서도 역시 특정 사람들만 진입이 허용되는 듯했다. 환호성이 들린다. 아마 선두 그룹이 당도한 모양인데, 몇 겹의 철책선 너머로는 선두 그룹을 호위하는 경찰차만 보인다. 내년에는 더 단단히 준비해서 구경해야 제대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내가 사는 뉴욕이니까 하며 그냥 덤볐다가, 경찰 저지선 때문에 번번이 좋은 장소에는 접근도 못 하면서, 괜히 경찰만 원망했었다. 그냥 놔두면 좋을 것을... 경찰이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저지선을 많이 만들어서는, 멀리 빙빙 돌게 만들지를 않나, 또 어떤 경우에는. 빈 곳을 여기저기에 만들어 놓고는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다가, 시간별로 또 지역별로 해제했다가 또다시 막았다 하며 유별나게 군다고 생각했댔는데, 이번에 한국에서의 이태원 참사를 보니, 뉴욕 경찰들은 그동안 얼마나 인파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마라톤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열리는 각종 퍼레이드 등의 행사의 대부분은 뉴욕시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업체나 단체가 주관하는 것인데도, 뉴욕 경찰은 그 무거운 철책선을 일일이 풀었다 거두었다 하며 인파 관리 잘해주었던 것에 대한 감사를 못 했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시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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