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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Dec 20. 2020

08 시범단 라떼

어른이태권도





어느 덧 하루의 마지막 차량이다. 

  

  "너희들, 벨트 멨지?!"

  "아참참.."


시범단 수련생인 초딩 대여섯명을 태우고 들어가는 길이다. 한 숨 돌릴 겸,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오늘이 9기 입단식인가?"

  "어. 야, 근데 우리 때 보다 많이 좋아지지 않았어?"

  "맞아. 우리 바로 다음부터 아디다스 도복으로 바뀌고."

  "임명장도 주잖아~"

  "이번에도 레드카펫 깔겠지?"

  "아오. 우리 땐 그런 거 하나도 없었는데~"


태권도장 대표 시범단 7기 아이들의 '라떼'다. 


지난 주의 시범단 수련 시간에는 9기 시범단 오디션을 봤었다. 꽤 많은 아이들이 오디션에 참가했고, 관장님과 사범님들도 매의 눈으로 심사를 하셨다. 사실, 동네 태권도장 꼬마들 시범단 쯤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하려 했는데 사범님들의 진지함과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에 조금 놀랐다. 아이들은 오디션 시작 한참 전부터 몸을 풀고 각자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떤 아이는 선배 시범단 아이와 일대 일로 동작 하나하나씩 짚어가며 품새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엽고 보기 좋았다. 


몇 년전 나도, 성인태권도장을 다닐 때 시범단원으로 공연을 했던 적이 있었다.

도장 회원들끼리의 연말 이벤트로 기획했던 일회성의 시범단 공연이어서 오디션은 커녕 관장님이 같이 하자고 여러 회원들에게 통사정을 하셨더랬다. 나도 그때 같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일상적인 기본 수련이 끝나면 시범단원들이 따로 모여 연습하면서 서로 더 친해지기도 했다. 연습이 끝난 후에는 관장사범님들과 멤버들 간의 치맥 한 잔에, 서로의 직업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각종 재테크 정보와 여행정보 등 온갖 흥미로운 잡학지식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몇 년만에 밤새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여전히 건재한 나의 놀 체력을 확인하기도 했고. 태권도 친구들과 신촌 거리를 돌아다니며 기왓장 격파게임으로 딴 거북이 인형은 옷장 속에서 잘 자고 있다. 오로지 태권도와 시범단 생각으로 퇴근시간만 간절히 기다려지는 시절이었다. 나의 시범단 '그떼'다.


코로나로 뒤숭숭한 요즘,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함께 얼굴 마주보고 사는 이야기 하며 밥 한끼,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이 이렇게 까마득하게 그리운 시절이 될 줄은 그 땐 정말이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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