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마르마라 해에서
바다 한가운데서 수영해 본 적 있어? 바다 한가운데서는 누구나 몸이 뜬다는 거 알아? 난 그걸 35살에서야 알았어. 그냥 염도가 30프로가 넘는다는 사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알고 살았어. 파도도 일지 않는 깊은 대양 바다 한가운데서 온몸의 힘을 빼고 누우면 팔다리를 전혀 파닥 거리지 않아도 몸이 가벼이 뜬다는 것. 살면서 우린 겨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의 물놀이를 경험하거나 구명조끼가 입혀져서 예를 들면 피피섬 가는 길 한가운데 던져지거나 하는 정도였지.
아마도 라키를 너무 많이 마셔서일 거야. 이스탄불의 남쪽 항구를 벗어나 한참을 달렸는데도 흑해에서 흘러든 바닷물 때문인지 마르마라의 바닷물도 그냥 검푸른 색이었어. 떠나온 육지가 보이지 않을 때쯤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 요트를 세우고 터키의 전통술 라키를 마셨지. 원래는 투명한 색인데 물을 섞어 넣으면 흰색이 되어버리는 술이야. 우유 빛깔의 술에 민트와 요구르트로 버무린 새우요리를 번갈아 먹었어. 검은 바다, 하얀 술과 새우.
바다로 뛰어내린 것은 크리스티나가 먼저였어. 나랑은 마이애미에서도 자주 사우스 비치에 함께 였어. 그래도 시커멓고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는 곳에 겁도 없이 뛰어내리다니. 내 친구 누군가가 봤다면 객기라고 했을 거야. 그 바다에 나도 뛰어들었어.
“ 점프, 그리고 하늘을 보고 온몸을 나른하게 늘어뜨리면 몸이 떠. 무섭다고 몸에... 힘을 주면 금세 물을 먹을 거야.”
그녀는 그게 바다에서의 낮잠이라고 했어. 그때 알았어 사람들이 어려운 일에 자꾸 부딪히면 강해진다고 하잖아. 근데 정작 우리는 벽에 부딪혀 그것을 깨부수는 법만 배우지 그것을 넘어서는 법을 깨닫지는 못해. 파도가 연신 쳐 대는 파도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파도가 만든 박자에 맞추어 숨 쉬며 겨우겨우 수영을 하는 대신 고요한 대양 한가운데서 하늘을 즐기는 법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런데 대양의 그 깊은 바다, 가늠도 안 되는 그곳에서는 누워 있으면 파도가 불시에 얼굴로 덮쳐와 물을 먹진 않을까? 가라앉을까 해서 열심히 팔다리를 허부적 거릴 필요도 없어. 어차피 물에 빠지는 것은 이보다 앝은 바다나 심해나 마찬가지잖아. 그러니까 그냥 어느 상쾌한 아침, 침대에서 나른함을 더 즐기듯 하늘만 보면 돼.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작은 공기 방울 소리가 뽀글뽀글 들릴 뿐이야. 수영장 필터 소리나 파도의 철퍼덕 거리는 소리가 아니라고. 그때 깨달았어. 난 돌아가고 싶지 않구나. 그리고 난 이제 기회가 생기면 바다로 뛰어들어. 낚시를 하다가도, 무인도에 가던 작은 배를 세우게 하고 맨몸으로 뛰어들지. 그렇게 나는 돌아가지 않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