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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wonder Oct 23. 2020

돌보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베란다 친구들~ 오늘도 하루도 싱싱하게!!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난 봄 거실에서 뒹굴거리다 바닥에 쏟아지는 햇빛을 보고 집에 식물을 들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자주 먹는 채소와 잎 모양이 마음에 드는 모종 화분 몇가지를 주문했다. 가끔 파스타 해먹을 때 냉장고에 항시 있었으면 했던 바질과 로즈마리가 가장 먼저 집에 도착했는데, 금새 잘 자라는 것을 보고 다른 작물들도 망설임 없이 입양했다. 샐러리, 루꼴라, 쪽파까지 베란다에 놓아두니, 요린이에서 용산구 마샤스튜어드로 업그레이드된 기분이 들었다.


이사오기 전 이집을 처음 보았을 때 정남향인 거실에  볕이 길게 들어와 식물을 키우기 좋겠다 생각했다. 거실은 사실 반려묘 김바다의 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식물들을 실내에 두기는 어려웠고, 거실의 큰 창 밖으로 긴 선반에 두면 볕도 바람도 잘 쐴 수 있을것 같았다. 출퇴근 시간에 창문 열어 환기 시키는 겸 식물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흙이 말라 보일때마다 2리터 생수병 가득 물을 담아 화분마다 흠뻑흠뻑  주는 것이 즐거운 일과가 되었다.


물만먹고도 어떻게 이런 맛과 향을 내는가 궁금할 정도로 '바질'은 기특하게 무럭무럭 새잎을 내놓았다. 새 잎이 싱싱할 때 많이 소비할 요량으로 바질을 곁들인 파스타, 카프레제 샐러드는 주에 한번씩 만들었고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는 애지중지 길러온 모종을 작은 화분에 심어 담아 나눠주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때마다 진항 향을 풍기는 로즈마리는 자주 보라색 꽃을 피워냈고,  많이 웃자랄때면 한움쿰씩 잘라서 로즈마리 오일을 만들었다. 올리브유에 진한 로즈마리 향을 입히니 음식에도 풍미가 더해졌다. 용산구 마샤스튜어드에서 여자 제이미 올리버로 업그레이드 된게 분명했다.


따뜻한 봄날 알콩달콩 식물들과의 동거가 시작된 후  한동안 무탈했는데 문제는 여름에 찾아왔다. 해가 잘드는 만큼 작렬하는 태양은 식물들의 잎과 줄기를 마르게 만들었다. 분명 아침에 흠뻑 물을 주고 나선뒤 돌아와보면 시들시들 풀이죽어있는 모양새였다. 허브류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잘 못자란다는 것을 입수하고 미봉책으로 식물들의 자리에 그물망 천장을 만들어주었다. 싱그러운 베란다 텃밭이 마치 인삼밭이 된 느낌이랄까.. 검은색 차양막 아래서 그래도 덜시들고 덜더워 하는것 같아 한시름을 놓았다.

 

두번째 위기는 태풍과 함께 찾아왔다. 역대급 태풍으로 사람도 등교를 하네 마네 하는 지경인데, 이 날씨에 비바람과 맡서서 하루종일 휘둘릴 아이들을 생각하니 밤새 잠을 설쳤다. 하는 수 없이 새벽부터 일어나 모든 화분을 화장실로 임시 대피시킨 뒤에야 태풍을 뚫고 출근을 했다. 다행히 그날의 태풍은 세력이 매우 약화되어 아무일 없이 지나갔다.


다시 볕좋고 바람좋은 가을이 되니 식물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잎을 내고 키를 키워가고 있었다. 모종화분 지름에 두세배로 잎을 키워 몸집을 불린 아이들을 골라 더 큰화분으로 분갈이했다. 새 흙에서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흙을 눌러 다지고 하루에도 두세번 상태를 살펴보면서 '이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연봉이 달라졌을텐데..' 이런 내자신이 낯설어 푸식 웃어버렸다.


아침 저녁 식물들의 상태를 체크할때면 잎을 한움쿰 만져서 향도 맡고 물도주고 시든잎도 떨궈내준다. 생각해보면 베란다 말못하는 친구들 덕분에 아침저녁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손수 레시피를 찾아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된것이니, 식물들이 나를 돌보았다 말해도 이상할게 없다. 유난히 추을거라는 올 겨울, 베란다 친구들이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월동준비를 해야겠다. 나를 오래오래 돌보아줄 수있도록 오늘 하루도 푸르고 싱싱하게!!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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