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에 만난 김형석 작곡가 이야기
"30년간 작곡가로 계속 활동하는 원동력이요? 그런거 없어요. 다른거 할줄 아는게 없거든요.하하. 천성에 따라가는 것일 뿐이에요."
지금으로부터 30년전, 1988년 김형석의 첫 작곡의 결과물은 김광석의 곡 '사랑이라는 이유로'다. 좋은 작곡가과 좋은 가수의 만남이었다. 이후 김형석은 30년간 발라드 작곡계의 거장으로 군림했다. 현재까지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곡수만 1200곡이 넘고 김광석을 시작으로 변진섭, 신승훈, 김건모, 박진영, 임창정, 박정현, 성시경 등 그를 거친 가수들은 모두 히트했다.
작곡가 김형석은 기업인이기도 하다. 그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키위미디어그룹의 회장이다. 그러나 사업적인 일보다는 자신이 가진 음악적 그릇 안에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구상하고,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비즈니스 부분을 담당하는 일은 정철웅 대표이사에게 일임했다.
김형석 작곡가는 중국 시장에 진출, K팝의 확장에도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국내 운영 중이던 아카데미 케이노트 사업을 중국에 진출시켰다. 이 때문에 그의 사무실 안에는 '중국어 기초' 교재가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2010년에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차근히 중국 내 K팝 아카데미 도입을 시도했고 점차 늘려나가는 중이다.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면 분명 큼지막한 기회들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석 작곡가는 최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정치적인데도 관심이 높다. 김형석 작곡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헌정곡을 선물했고, 이 노래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찬장에 울려퍼졌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최근 작곡가이자 기업인, 문화인으로 24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는 김형석 작곡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피아노와 팝아트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던 그의 방에는 과시보다는 그의 철학이 소박하게 베어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30년간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로 작곡을 시작했다. 30년째 음악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데. 사실 다른걸 할줄 아는게 없다. 이것 말고는 밥값할 것이 없다.(웃음)"
-오랜 시간 감을 잃지 않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일인 것 같다.
"엄청난 신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 하는 것 혹은 음악에 따른 부수적인 일들 외에는 관심이 없다. 천성인 것 같다. 천성에 따라갈 뿐이다."
-슬럼프가 있었을 때는 없었나.
"음악때문에 슬럼프는 항상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다. 인생은 어차피 다 솔루션이다. 자고나면 다 일이 생기니까(웃음). 음악을 통해 생긴 슬럼프도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럴때면 환경을 바꾸거나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다른 음악을 들으며 자극받는다. 음악한다는 것이 철학이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스킬이다. 곡을 남들이 듣기 좋게 쓰지만 나는 철저히 계산한다. 모티브는 한두마디다. 작품을 만드는 것은 결국 계산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슬럼프가 매번 생긴다. 줄줄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슬럼프는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어제 박칼린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도 묻더라.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동안 작곡을 했냐'고. 엄청난 의미나 신념이 있는 것처럼 대답해야할 때 난감하다.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 같다. 옷이 좋아서 옷을 만들었을 뿐이고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는 것 뿐. 결국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일들에 대한 관점이 중요한거다."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비롯해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 등 정말 많은 히트곡이 있다.
"내가 80~90년대에 활동한 것이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지금 활동했으면 힙합도 도전해야 했을텐데. 하하"
-영감은 어디서 받는지.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는 내 삶 자체가 영감이었다. 사랑하고 이별한 것을 악보에 옮겨적으면 됐다. 이후 프로가 되면서 의뢰가 오면 그때마다 내 영감을 끄집어 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다른 음악이든 미술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성시경의 곡을 쓰려면 성시경의 목소리나 느낌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언니쓰의 노래를 쓸 때는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많이 관찰했다."
-트렌드에서 뒤쳐지지 않는 것도 대단한 일인 것 같다.
"항상 연구하고 공감한다. 항상 퀘스천 마크가 있어야 한다.관통하는 맥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고, 트렌드에 항상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 것 같다. 클럽에도 가보고. 디지털 시대에서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80년대부터 시작해서 30년간 변화된 시장을 체크하며 받아들이는 일도 중요하다. 창작자의 고민보다 프로듀서의 고민이 더 많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게 만드는 일 역시 프로듀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음악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많이 분리될 것 같다. 우선 아티스트와 아이돌 시장이 분리될 것 같다. 아이돌 시장은 꾸준히 살아남을 것 같다. K팝은 아이돌 시장이 주축이다.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은 딘, 크러쉬, 자이언티 등과 같은 아티스트다. 아이돌은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여지는 것이 다다. 멋지고 예쁜 친구들을 세워놓으면 아이돌처럼 보인다.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내가 서면 아이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20년 전 미국 시장에서 아이돌이 유행할 때 지속되지 않은 이유가 음악성의 부재였다. 우리도 그게 점점 생기는 것 같다. 한계들이 생길 것 같다."
-음악과 영화 등 각 분야 사업에 진출했다. 최근엔 투자한 영화 '범죄도시'도 크게 히트했다.
"정철웅 대표가 경영을 하고 음악은 내가 맡고 있다. 공연은 박칼린씨가 전담한다. 서로 각 분야에 대해 터치는 하지 않는다. 각 분야에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키위미디어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본업이 사업가는 아니지만 사업가가 매일 말하는 것이 사람이다. 정철웅 대표랑 인연을 맺은지 20년이 됐다. 박칼린은 94년에 알았으니까 23년 정도 됐다. 장원석PD와도 10년이 넘었다. 오래된 사이들로 연계된 집단이다. 요는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이 일을 버리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신뢰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알맞은 시기에 한 회사에서 뭉친거다."
-음악 외적으로 회장으로서 신경쓰는 일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중국에 케이노트 차이나를 진출시킨 것에 많이 신경쓰고 있다. 340억 규모의 계약이다. 한국에서 담을 그릇이 작다고 판단했다. 현재 사드 때문에 주춤하긴 하지만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키위미디어는 사실 석탄을 팔던 회사다. 엔터테인먼트로 업종을 바꾼지 1년 정도 됐다. 1년새 갑자기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근히 쌓아 올려나가고 싶다. 투자를 했던 '범죄도시'의 성과가 좋았고 내년부터는 음악적으로 매출이 날 것들이 있다. 더불어 최근엔 중국 화련과 3000억 규모로 유통 사업을 계약하기도 했다. 사드가 진정된 이후에는 실질적인 수익이 많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뮤직아카데미인 케이노트를 중국에 진출시킨 이유는.
"중국과 인연을 맺은게 2010년 '슈퍼스타K'가 방송될 때였다. 그때 내가 후난TV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또 이후 중국에서 남자 30명을 데리고 와서 국내에서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아이돌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과 인연을 맺고 중국에 K팝의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아카데미를 세웠다. 상하이에 지점이 있는데 내년 북경과 심천, 광저우, 산둥에 지점을 늘릴 계획이다. 중국은 아직 아카데미를 기반으로 실용음악을 배우는 기반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중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저기 책장에도 중국어 교재가 꽂혀 있지만 거의 4페이지 정도 진도가 나가다가 말았다. 정말 힘들다(웃음). 언어도 계속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지금은 벙어리 수준이긴 하지만 언어의 벽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중국어를 너무 유창하게 해도 사람이 인간미가 조금 떨어지지 않나? 하하."
-중국과 협업 중인데, 신뢰를 쌓기가 수월했나.
"케이노트 차이나(뮤직 아카데미) 외에 중국과 하는 것이 많다. 리얼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 신기하다.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신뢰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나는 수년 동안 개인적으로 중국 주요 인물들과 신뢰를 쌓았다. 중국 역시 처음엔 경계하고 시험하기도 한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거쳤다. 중국은 시험이 끝나면 무한한 신뢰를 주는 나라다."
-사드로 K팝이 주춤한 상황인데, 어떻게 보고 있나.
"곧 해결될 것 같다. 중국 전당대회가 끝났고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 주변국에 대한 견제를 보여줬던 것이 아닌가. 이제 전당대회가 끝났으니 양국간 교류를 위해서는 사드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사업과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
"중국 사업은 앞으로 3년에서 10년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다.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믿음을 쌓아 나가보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일과 중국 일을 병행하다보면 육아에는 힘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들 돌볼때가 제일 행복하고 좋다. 아이들을 보다보면 나까지 아이가 되는 느낌이다. 무언가에 아무런 보상 심리 없이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세상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아이로 인해 내 삶을 더 똑바로 볼 수 있게 됐다."
-아트에도 손을 뻗쳤다. 팝앤팝이라는 팝 아티스트 관련 컬래버레이션도 진행 중이라고.
"이건 회사와 별개로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다. 지난해 팝아트 작가들 전시회를 봤다. 이거를 우리 신인들과 협업해서 공연을 하든 전시를 하든 협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가수들과 달리 본인의 작품에 대해 보호를 받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권리라든가 저작권에 대해서. 그래서 가끔 어드바이스를 주다가 최근엔 아티스트들과 계약까지 맺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은 아티스트가 70명이 넘는다. 겁은 나지만 잘 해보려고 한다. 음악적으로 연관지어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