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폭싹 속았수다.

by 그래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엄마의 삶에 맞물리며 많이들 운다고 하지만,

나는 다를 줄 알았다.


내 기억의 우리 엄마의 삶은

할말 다 하고, 미련도 후회도 없이 살았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폭싹 속은 우리 엄마의 삶이 자꾸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교대역에서 강남역으로 가는 길은 매우 혼잡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영어수업을 받기 위해 학원에 가는 길이었고 엄만 출근 길 이었던 것 같다.


아침 출근길 2호선은 지옥철 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 많고 지독했다.

모두 바쁜 제 갈 길을 재촉 하는 와중에 엄만 무슨 일인지 내내 통화 중이었다.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조금 앞서 걸으며

먼저 가지도 그렇다고 곁을 챙기지도 못한 채 뒤쫒아 오는 엄마를 눈길로 재촉할 뿐이었다.


"엄마!"

소근대듯 외치는 소리에 엄마가 걸음을 재촉하며 내 곁에 붙는다. 그리곤 이어지는 엄마의 통화소리

"네, 근데 사장님. 이번 같은 경우는 저도 정말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제가 안 해드리는게 아니라 상품 규정이.. "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를 높이는 어느중년 남자의 호통이 들려온다.

'하.........'

순간 화가 밀려온다.

호통치는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에 대한 화 인지.. 지옥철 속에서 자꾸만 뒤쳐지는 엄마에 대한 것인지..

누구를 향한 울화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마 구질구질한 내 삶에 대한 화 였을 것이다.


'엄마 처럼 살지 않을거야'

참 자주 했던 말이다. 새벽 꼭두같이 일어나 남매의 도시락을 싸고, 저녁을 손수 지어 먹이셨다.

회사생활 하는 30년 내내 그 일을 다 해내셨다. 우리 집은 늘 빚에 둘러싸여 있었고, 조금이라도 벗어날라 하면 다른 빚이 또 발목을 잡아 끌었다.


그 날도 나는 그 말을 다시 되새겼다.

'엄마 처럼 살지 않을거야'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뭔데 그래"

"아냐 너는 신경쓰지마. 어서 가"

그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나는 강남의 어느 대형학원으로, 엄마는 일터로 헤어졌다.


학원에서 나는 자기계발을 위해 이 아침에 학원 출석도부지런히 하는 성실하고 예쁜 학생이었다.

주변에 친구들도 다 말끔한 차림새에 상냥한 말투, 그 곳은 평화로웠다. 내가 학원 교무실에 불려가기 전 까지는 말이다.


사실 내가 다닌 학원은 편입 학원 이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대학 입학 후, 현실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욕심이 생겼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이 아닌 곳으로 학교를 다닌 다는 것이 갑자기 창피해 졌기 때문이다. 당시 편입학원은 매일수업을 했는데 주말도 어김없었다.

"너도 주말에 나와야지? 성적이 계속 떨어지잖아."

"....."

"주말에 나와서 하지 않으면 이번 편입시험은 합격 하기 어려울 거야. 잘 생각해봐"

당시 나는 주말엔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이 편입하시는 걸 반대해서 학원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제법 성적도 잘 나왔다. 그 학원은 고약스럽게도 거의 매주 치르는 편입예비고사의 등수를 복도 게시판에 게시했다. 상위권에 있던 나는 어느새 점점 하위권으로 내려왔고 다가왔던 친구들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넌 왜 주말엔 안나와? 같이 나와서 공부하자"

아빠가 매일 아침 벤츠로 학원을 데려다 주는 딸내미께서 묻는다. 나는 차마 사실을 얘기 할 수 없었다.

내 자격지심이 내 발목을 잡아 끈다.

'학원 그만둬야 겠다'

사실을 말하는 대신 나는 포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학원을 정리하고 나왔다.

그날 저녁 집에서 만난 엄만, 저녁을 준비 하고 계셨다.

"어서와 저녁 먹자"

"안먹어"

난 안되는 걸까. 어째 현실은 벗어나려 할 수록 날 잡아 끌어 내리는 건지. 근데 이런 현실 속에서 왜 식구들은 늘 평안한건지. 내가 이상한 걸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학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 학원 그만 뒀어. 이제 그냥 아르바이트나 할래"

"그래, 잘 생각 했어"

뭘 잘 생각 했다는 것인가! 영어학원을 다니다 그만 둔 줄 아는 부모님은 거기까지만 물으셨다.

'그래 내 주제에.....'

주제를 파악하자. 누군가는 꿈을 꾸고 쫒는 일이 현생을 사는 것 보다 중요 할 순 없다. 그때 나에게 꿈은 사치였다.


"엄만, 아침에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아침에?? 응. 별일아냐. 자주 있어 그런일은"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 모녀는 별말없이 저녁 식사를 마쳤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엄마도 내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오늘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 문득 이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별일 아닌 듯이 말 한 그 하루를 엄마도 그랬겠구나!

꿈이 사치 였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겠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저녁을 아무렇지 않게 내어줄 때 까지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을까.

전쟁같은 지옥철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을까.

엄마는 지금도 지하철 2호선을 타시고 강남으로 출근을 하신다.

그 세월이 벌써 30년이 넘었다. 높았던 구두굽은 점점 낮아져 이젠 워킹화 밖에 신을 수 없다.

닳아진 구두굽 만큼 엄마의 시간도 닳아졌겠지.


엄마,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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