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 바람이 조금은 쌀쌀한 가을 밤 이었다.
나는 엄마와 꼼장어 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매서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고, 이유모를 아빠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집이니? 집 앞에 있는 꼼장어 집으로 올래?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께."
신이 났다. 매일 출퇴근 하는 엄마는 깜깜한 저녁이 되서야 집으로 오시는데 그날은 조금 더 일찍 퇴근 하셨을 뿐 만 아니라, 맛있는 것 까지 사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잠바 하나 걸쳐 입고 뛰어 나갔다.
"엄마!"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있는 엄마가 너무 반가웠다. 우리 엄마지만 이쁘고 고왔다.
"어서와, 오늘 엄마랑 맛있는거 먹자"
기쁘게 좋았다. 실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랜만에 외식인 것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 둘 뿐이라 더 좋았다.
그렇게 아빠없는 가족외식이 비밀리에 진행 되고 있었다.
지글지글 숯불은 빨간 빛을 내고 있었고, 나는 그보다 더 빨간 양념 꼼장어를 열심히 굽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장님이 무심히 다가 오셨다.
"이제 드셔도 되요"
"저희 맥주 한병만 주세요. 그리고 제가 이 아이 엄마인데, 보호자 있으니 맥주 좀 같이 마셔도 되죠?"
'맥주??!!! 맥주 라니.... ! 게다가 여긴 집이 아니고 밖이란 말이다.'
묘한 기대감이 올라온다. 내 일탈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공식적으로 허락 해 주는 것만 같아 떨리기도 했다.
"엄마, 여기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나 진짜 마셔도 되?"
"엄마가 있는데 뭐 어때! 괜찮아 한 잔 받아봐"
사실 집에서는 부모님이 주신 맥주를 한 두잔 마셔봤지만, 밖에서 당당하게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괜히 얼굴이 발그레 해지고 떨린다.
"캬! 진짜 맛있다. 오늘 아주 해피데이 구만!"
엄마가 웃으며 가만히 바라 보신다. 그저 신이 난 고2 사춘기 딸이 좋아 보이셨나보다.
잘 익은 꼼장어 하나를 내 그릇에 올리며 말씀 하신다.
"엄마 아빠는 말이야, 너가 모르는 우리 둘만의 추억이 있단다?"
그릇에 놓여진 꼼장어를 집어들다 말고, 그대로 그릇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지금 네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우린 서로를 정말 사랑했었어. 여행도 다니고 손도 잡고! 아빠는 살면서 거칠어 졌지만 사실 다정하신 분이야."
"그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거야?"
"그냥 아빠랑 엄마랑 서로 엄청 사랑해서 결혼 했었다는 걸 알려 주는 거야. 언능 먹어!"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맥주 한병을 다 비워내고 나서야 자리에 일어섰다.
집에 오니 퇴근 한 아빠가 무력하게 누워계신다. 살짝 열린 안방 문 틈으로 분명이 보였지만, 애써 안보인 척 후다닥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 너머로 건조한 두 분의 대화가 어렴풋이 흘러 들어온다. 부모님의 흐릿한 대화를 듣다가 씻는 건 잠시 미루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본다.
'내가 모르는 두 분의 추억이라..... 그게 사랑? 사랑이라고 했던가'
다툼이 많았 던 우리 부모님에게 사랑이라니, 생소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엄마가 먼저 사랑임을 고백하다니!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분명 한 건 내가 모르는게 맞다! 모를 수 밖에 없는 두 분의 시간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제서야 슬며시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이미 두 사람의 사이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게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삶에 묻혀 건조하고 거칠어진 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시작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껴들고 나설 자리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왜 아빠를 미워 했을까. 엄마는 왜 나에게 그 얘기를 해 줬을까. 이 모든 물음이 눈처럼 스르르 녹아 스며 들어 버렸다. 이유모를 아빠에 대한 미움을 멈춰야 겠다 싶었다.
고2 매서운 사춘기는 그날 그 꼼장어 집에서 사그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