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많은 이야기들을 잠시 뒤로 하고, 이번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내 기억이 슬픔으로 왜곡 될까 조금 두려워 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드시 알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아빠를 무서워 할 때도 나는 아빠를 무서워 하지 않았다.
아빠는 멋졌다. 어찌됐든 오랜 사업 경력으로 늘 사장님 소리를 듣고 다니셨으며, 가을이면 빨간 목폴라에 가죽재킷을 빼 입으셨다. 외모도 그 시절 꽃미남 이셔서, 이따금 교문 앞으로 마중 나온 아빠를 보며 친구들은 놀라곤 했다.
그 시절 나의 바닥난 자존감을 올리는 것도, 그리고 다시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도 아이러니 하게전부 아빠였다.
어느 한 날의 장면이 그림책 표지처럼 선명하다.
나는 오래 된 장판 위에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워 있었다. 먼저 아빠가 누웠고, 나는 그 옆에 쪼르르 달려가 아빠의 팔을 번쩍 집어들었다. 그리곤 그 위에 내 머리를 뉘였다. 때는 아마 대여섯살 쯤으로 기억 된다.
부엌 일을 하시 던 엄마가 흘깃 거리시며 말한다.
"딸 있는 아빠는 좋겠다!"
그때 내 머리보다 큰 아빠의 팔이 얼마나 든든하고 큼직한지 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팔은 내 유년시절 나의 놀이터 였다. 메달리기에도 딱 좋았고, 베고 누워 있기에도 딱 좋은. 무얼해도 딱 좋은 나만의 놀이터였다.
나른하고 정적인 그 순간의 기억이 나에겐 진한 크레파스 꾹꾹 눌러 그린 그림처럼 선명하다.
어린시절 나와 아빠의 추억은 모두 이처럼 선명하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무더운 여름 날,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집으로 향했다.
날은 쨍하니 더웠고, 우리는 집에 오는 길 내내 땀을 뻘뻘 흘렸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집에 계셨다. 당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아빠는 출퇴근이 자유로웠다.
"너희 수영장 갈래?"
아빠가 묻는다. 갑작스럽게 수영장이라니...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그만큼 또 설레였다.
옆을 돌아보니 친구 역시 나와 비슷한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 눈을 마주보고 잠시 멍하였다.
"친구야, 집에가서 부모님께 허락맡아 보고 같이 갈 수 있으면 연락 줄래?"
친구는 대답과 동시에 뛰듯이 우리집을 나갔다.
"진짜? 오늘 우리 가도 돼?"
"응, 친구 못 가면 우리끼리 가자. 준비해"
잘 기억은 안나지만 우리는 어찌저찌 수영용품을 잘 챙겼다. 친구도 무사히 허락을 받아 우리는 이내 출발 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가까운 야외 수영장은 집에서 20분 내외 거리였다. 수영장으로 향하는 그 도로 위에서 창문을 살짝 내렸다.
여름 바람이 불며 바람결에 눈꺼풀은 슬쩍 감기고 머리는 휘날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고개를 돌려 운전하는 아빠의 뒷 모습을 바라본다. 내가 좋아하는 아빠의 팔이다. 초록 나뭇잎이 선명한 어느 여름날, 나는 내 그림책의 두번째 페이지를 완성 했다.
이 날의 아빠는 내 자랑이었고, 내 사랑 이었다. 그날 그것은 분명 했다.
내가 아빠를 사랑한 만큼, 아빠도 나를 반드시 사랑했다.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엔 바로 엄마 였다. 엄만 늘 입버릇 처럼 말씀 하셨다.
'너가 아빠께 말씀 드려. 아빠는 너한텐 꼼짝 못하시잖아'
'그래, 아빠는 나한텐 꼼짝 못하시지. 나를 제일 사랑하기 때문에'
난 엄마의 말을 늘 그렇게 이해 했다. 담배를 그만 피셔라, 술은 조금만 드셔라. 집에 빨리 오셔라.
엄마가 할 수 있는 잔소리를 내가 할 수 있었 던 건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매번 똑같이 말을 해도 아빠는 그저 웃으셨다.
"알았어. 우리 딸이 그러라면 그래야지"
엄마가 똑같이 말하면 짜증을 내셔도 내가 말하면 웃어 넘기셨다. 왜냐하면 아빠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그땐 그게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한 쪽으로 기울어진 사랑이 얼마나 슬픈 것 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의 어린 나는 아빠가 나를 반드시 사랑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는 나를 반드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