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꽃 Ⅱ

by 그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수술하는 엄마를 그저 '수술만 잘 마치게 해 주세요'라고 빌던 나의 기도는 '제발 엄마가 예전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 주세요'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팔에는 여러 개의 바늘을 꽂고 있었다.

무언지 모를 약물이 계속해서 주입되고 있었고, 엄마는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다가 이내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엄마의 곁을 지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날따라 누워 있는 엄마보다 내 인생이 더 절망적인 것 같은 슬픔이 차 오르고 있었다.

모든 게 끝이 난 것 같았다. 나는 엄마보다 더 빨리 무너지고 있었다. 차가운 엄마의 발 끝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때였다.


"밥은 먹었니? 오늘 생일이잖아"

숙모가 보온도시락을 건네며 조심히 말하신다. 난 고개도 채 들지 못한 채, 묵묵히 받아 들었다.

그랬다. 오늘은 내가 태어 난 날, 엄마가 날 낳으신 날이다. 마땅히 그날의 주인공이어야만 했던 우리 모녀는 둘 다 까맣게 그날을 잊고 있었다.

"한 숟갈이라도 먹어봐"

"....."

분명 감사해야 할 일인데 그땐 그렇지 못했다. 그저 길 잃은 원망만이 쌓이고 있었다.

"잠시 쉬고 와, 엄마 곁엔 내가 있을게"

뒤 따라 들어온 아빠가 건넨다.


당시에 나는 마음 한편이 텅 비어 버렸다. 그저 고장 난 카세트기처럼 늘어진 마음을 정돈하지 못한 채, 반복해서 돌리고 있었다. '엄마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엄마가 죽으면...' 아빠만 마주치면 쏘아대던 마음도 말 한마디에도 팩팩거리던 성질머리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에 나에겐 중요한 게 더 이상 남아 있질 않았다.


대꾸 없이 병실을 나가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만 해도 엄만 몇 번이고 정신을 잃었다. 의사는 장폐색이 의심된다 하였고 다양한 약물과 치료를 병행하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직 수술 후 온전히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엄마한텐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난 계속된 불행에 홀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 역시나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엔 아빠가 엄마 곁을 지킨다. 어찌 된 일인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간호사가 날 반가워한다.

"보호자님! 환자분 오늘 새벽에 대변보셨어요!"

"정말요??"

"네! 아버님께서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기저귀를 손에 들고 뛰어오셨어요."

"네??!! 아빠가요?"

"네!! 하하하. 간호사 생활 동안 이런 아버님은 처음뵈요. 참 다정하신 분이에요."

대변을 보았다는 건, 장폐색이 굉장히 호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옥 같던 지난 며칠이 마무리될 수 있는 좋은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엄마의 상황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빠가 그걸 들고 간호사실로 뛰었다는 것이다. 나는 감히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조심스레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덩치보다 작은 보조침대에 아빠가 비스듬히 누워 코를 골고 계셨다. 그 옆에 잠든 엄마는 어느 때 보다도 편안해 보이셨다. 누워있는 엄마의 발끝을 만졌다. 지난밤과 다르게 발끝이 따뜻했다. 엄마가 살아있다. 살아났다! 분명 간호사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왔어? 엄마가.."

내 인기척에 잠에서 깬 아빠가 어슴프레 말을 건넨다.

"응 들었어. 알아."

아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낚아챘다. 어색했다. 내 인생의 몇 안 될 가장 큰 기쁜 일이 분명 한데, 이 기쁨을 아빠와 나누는 게 맞나 싶었다. 가장 가까움에도 가장 먼 사이.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그 뻣뻣한 순간이 나는 잊혀지지 않는다.


이전 08화아빠의 꽃 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