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꽃 Ⅰ

by 그래

엄마가 쓰러졌다.

10여년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은 유독 기분이 좋았고, 모든 것이 수월했다. 난 오랫동안 준비 하던 회사 일을 잘 마쳤고, 기분좋게 퇴근 했다. 미리 준비 된 약속장소로 이동해서 맛있는 음식과 더 맛있는 술을 기울이며 친구랑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가 쓰러졌어. 빨리와"

왠일로 아빠가 전화 했다 싶었는데, 받자마자 건넨 말이 더 이상했다.

"응?"

"여기 00 병원이야. 빨리와"

"알겠어"

이런걸로 장난 치실일은 없었고, 그때만 해도 난 그저 엄마가 요새 과로 하셨나.. 쯤으로 여겼다.

"정말 미안해, 나 일어나 봐야 할 거 같아. 엄마가 좀 편찮으신 가봐"

"어 그래그래. 우린 다음에 또 만나자"

친구는 심상치 않음을 알았던 걸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 났다.


동네에 종합병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가보는 건 처음이다. 이 병원의 응급실이 어디인지 한 참을 물어 찾았다. 그만큼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나에겐 너무 낯설었다.

"아빠!"

무쇠같은 팔이 힘겹게 얼굴을 받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일인지 회색빛 얼굴로 간신히 눈을 들어 나를 바라 보신다.

"엄마 어딨어?"

"엄마가.. 엄마가."

"보호자 되세요?"

"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자리를 잠시 옮겨 의사가 말을 건넨다.

"지금 어머님께서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수술 받으실 병원은 저희가 이미 알아 두었고, 여기 병원 이동하는 것에 동의 한다는 싸인 좀 부탁드려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과로로 쓰러지신게 아니었던가? 아무말 못하고 벙긋 거리는 나를 보며 안되겠던 지 의사는 말을 덧 붙인다.

"뇌출혈 이세요"


뇌출혈은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다. 드라마속에선 늘 주인공이 사고치고, 부모가 쓰려졌다. 난 그만한 사고를 치지 않았다. 입을 틀어 막고 뒷걸음 치는 나를 엄마가 계신 곳으로 안내 한다. 믿을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엄마는 강제로 기구를 삽입하여 색색 어렵게 숨을 쉬고 있었다.

"어디 병원으로 가요?"

"중앙대 병원 입니다. 수술이 급해요"

두말 않고 싸인을 했다. 싸인과 동시에 엄마는 사설 응급차로 이동 되었다.

"보호자 한 분 같이 타셔야 해요"

"아빠는 운전해서 뒤쫒아 갈께. 너가 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난 간호사 손에 이끌려 응급차에 탔다.

"엄마..."

엄마가 낯설다. 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보다도 빠르게 인사를 건네던 엄마였다. 이렇게 누워서 아무 말 없는 엄마는 단단히 화가 났을 때 뿐이었다. 엄마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이건 씨티자료구요, 이건.."

동승한 간호사가 무어라 열심히 설명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할 병원에 도착 한 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빠르게 진행 되었다. 의사는 엄마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고 이전 병원에서 받은 진료차트와 검사결과지를 들고 어디론가 바쁘게 뛰었다. 아빠와 나는 정말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어떤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수술 들어 갑니다. 동의서 작성 해 주시면, 바로 준비 들어 갈께요. 그 전에 어머님께 대해서 여쭤 볼게 있습니다."

"네"

나는 동의서에 보호자 싸인을 하고 있었고, 의사는 아빠에게 엄마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최근에 머리 아프다고 하신 적 있나요? 드시는 약 있나요? 지병 있나요? 틀니가 있나요?"

힘 없이 대답을 이어가시 던 아빠가 말문이 막혔다.

"예쁘게 밀어 주세요. 그 사람 그리고 겁이 많아요. 무서울 거 같아요.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수술 동의 서명을 마치자 의사가 엄마의 머리를 밀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 순간 아빠의 눈엔 소녀시절의 엄마가 보였던 것일까. 전에 볼 수 없던 안쓰러움이 들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의사는 짧게 대답을 마친 후, 엄마의 침상을 끌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은 밤 새 이어졌고, 아빠와 나는 수술실 앞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우리는 말 한다미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동이 트기 전, 수술을 마친 의사가 나왔다.

"수술은 잘 마쳤습니다. 다만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아, 예후를 지켜 봐야 합니다. 설명 들으셨겠지만 깨어 나시더라도 후유장애는 있으실 겁니다. 쉽지 않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후야 어떻든 엄마가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 의사의 손을 붙잡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아빠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 후, 우린 엄마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중환자실을 지켰다. 나는 회사에 며칠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연차를 썼다. 기약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같이 죽을거야. 엄마랑 같이 죽을거야'

며칠이 지나도 쉽게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난 같이 죽을 각오만 되새기고 있었다.

"보호자님!"

중환자실 간호사가 급히 부른다. 병원에서 급한 호출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큰일이 났기 때문이다. 멍하니 앉아 있던 아빠와 나는 화들짝 놀라 조심히 중환자실 앞으로 다가갔다.

"환자 깨어났어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원래라면 1명씩 들어가야 하지만, 이 날은 함께 들어 갈 수 있었다.

"엄마..."

울음이 섞여 나온다. 뭔지 모를 기기와 호스들이 엄마를 뒤덮고 있었다. 엄만 아무말 없이 눈만 깜빡이셨다. 입에 호흡기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뭐라 말씀 하시는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목 마른것 같아요, 간호사님"

아빠다. 이번에도 아빠가 엄마를 알아챘다.

"아직 물은 안되는데, 안돼요"

"목이 너무 마른거 같은데 조금도 안될까요?"

재차 부탁해서 일까, 간호사 선생님이 물에 젖은 거즈를 엄마 입에 물려 주셨다.


"오늘, 내일 중환자실에 더 계시구요. 별일 없으시면 내일 일반병동으로 옮기 실 수 있어요. 정확한 건 교수님께서 말씀 해 주실거예요"


그 말 한마디가 우린 마치 퇴원명령 과도 같았다. 이젠 다 됐다. 다 끝났다 라고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대단한 착각 이었고, 엄마의 투병생활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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