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수술하셨던 의사 선생님께선 후유증 없이 회복하신 엄마를 보며 기적이라고 하셨다. 그리곤 그 기적같은 나머지 삶을 건강히 즐기시라 인사 건네셨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셨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아직 불편한 손으로 매 끼니 요리를 하시려고도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눈에 걸리고, 마음에 얹혀하지 마라 부탁도 해 보고 화도 냈지만, 아빠는 달랐다. 느리게 걷는 엄마를 데리고 시장엘 가고, 한발 앞에 서서 묵묵히 기다렸다. 느릿느릿 칼질을 하는 엄마를 보며, '정성이 남달라서 오늘 저녁은 보약이네'라는 싱거운 소리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니 집안은 매우 조용했고, 아빠는 작은 술 상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아직 엄마의 건강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기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겉옷과 가방을 대충 거실 소파 위에 올려놓고 아빠 맞은편에 앉았다. 인생 처음이었다.
"무슨 일 있어?"
"...."
잠시지만 아빠는 말이 없었다. 곧 잘 싱거운 농담을 건네던 아빠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엄마는 잔다."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셨는지, 대뜸 엄마의 안부부터 전하신다. 엄마에게 별일이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엔 아빠가 너무 슬퍼 보였다.
"오늘 엄마랑 싸웠어."
아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음에서 가시가 솟구친다.
"말이 돼? 몸이 아픈 엄마랑 싸우고 싶어? 하. 진짜"
"내 말도 좀 들어봐."
그러면 그렇지, 우리 집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다. 혹시나 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려는 찰나 아빠가 말을 이어 나간다.
"엄마가 죽게 놔두지 왜 살렸냐며 따지잖아."
생각지도 못했다. 도대체 왜 엄마가 그런 말을 했을까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를 어떻게 살렸는데, 엄마가 어떻게 그런 말을 아빠한테 하냐..."
고개 숙인 아빠에게선 흐르는 눈물을 볼 순 없었지만, 울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그러했고, 붉어진 얼굴이 그러해 보였다. 그간 우리 집이 화목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늘 씩씩하시고 유쾌하셨다.
늘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며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셨던 엄마가 그런 말을 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빠 역시 나 만큼이나 놀란 듯했다.
엄마가 가진 일상으로의 복귀 의지를 그저 엄마의 욕심으로만 생각했다. 무리한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속내는 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모님은 늘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은 반지하 빌라 그 상태 그대로였다. 나는 늘 이사 가고 싶다고 떼 부리듯 졸라 댔지만, 그때마다 엄만 끄떡없으셨다. 그래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에겐 흘러 넘어가는 말 정도라 생각했다.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막 나오셨을 때, 우리는 병원비로 그동안 모아 두었던 현금은 물론, 카드까지 모두 다 당겨서 썼다. 다행히 어느 정도 보험금도 받았지만, 그렇다고 갚아야 할 돈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엄마는 아빠에게 출근을 해야겠다고 하셨나 보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 가장으로서 무너졌다. 이미 정년 퇴임을 하신 후라 집안의 경제적 가장은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아빠는 말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권하지도 못하는 좌절감을 느끼신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도 같은 마음을 느끼신 것 같았다.
"소리치더라, 평생 새 아파트 한번 살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말이다. 그러면서 왜 살렸냐고 소리치는데..."
아빠의 말 끝이 더 흐려진다. 그리고 내 가슴이 꽉 조며 온다.
그날 밤, 나는 내 방 침대에 옷도 갈아 입치 못 한 채 그대로 엎드려 누워 밤새 울었다. 정말 동이 트기 직전까지 울다, 지치다, 다시 울다를 계속 반복했다. 왜 안 되는 걸까, 열심히 사는데 내가 뭘 잘 못 살았을까에 대한 원망. 고생만 하신 안쓰러운 부모님, 나의 철없던 과거가 모두 뒤엉켜 날 휘몰아쳤다.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원망스러울 때쯤, 아빠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곁에 무릎을 굽히고 앉으셨다.
"그만 울어. 아빠가 다 잘 못했어. 이제 제발..."
난 울음을 멈추고 엎드린 그 채로 아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선명했다. 지금 아빠가 얼마나 슬플지, 얼마나 울음을 꾹 참고 계신지, 얼마나 쓸쓸 한지 그 눈빛이 어떻게 나를 마주 하고 있을지 그 모습이 그려졌다.
아무 대꾸 없는 모습에 아빠도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나도 잠시 후 몸을 일으켰다. 내 침대에는 구름 같은 목화솜이불이 깔려 있었다. 엄마가 깔아 주신 거였다. 10년도 더 된 엄마아빠에게 물려받은 이 침대에 엄마는 목화솜이불을 깔아 주며 나에게 말씀하셨었다.
"우리 딸 푹신푹신한 거 좋아하잖아, 엄마가 시집올 때 받은 이불인데, 이거 정말 푹신해"
어느새 내 침대에도 구름같이 푹신한 이불이 깔려 있었다. 그 이불이 오늘은 내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번뜩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 출근 준비를 하고 일찍 집을 나왔다. 엄마도 아빠도 왠지 마주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엄마한테 말씀을 드려야겠다.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을 엄마한테 말씀드려야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집에 들어서고 나니, 집에는 엄마 혼자뿐이었다.
"왔어?"
한 손으로 어기적 저녁을 차리시며 엄마가 인사를 건넨다.
"응"
"밥 먹어"
식탁에는 밑반찬 몇 개와 금방 지은 듯 한 밥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 앉았고, 엄마는 늘 그랬듯 내 옆 가까이 앉았다.
"엄마, 어제 아빠랑 싸웠어?"
"응, 근데 왜 싸웠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네 아빠가 뭐라 하든? 엄청 삐져서 밥도 안 먹고 나갔어."
"기억이 안 나? 엄마가 아빠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
"아니, 약이 독한가. 잘 기억이 안 나"
엄만, 뇌출혈 이후 아직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을 한 움큼씩 드시고 계셨다. 정말 아직 수술 후유증인지, 아님 핑계인진 모르겠으나, 어쨌든 엄만 기억을 잘 못하시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빠한테 죽게 놔두지 왜 살렸냐면서 화냈어"
정말 기억이 나질 않으셨던 걸까, 옆에 앉은 엄마를 곁눈질로 살피니 너무 놀라신 눈치이다.
"엄마, 쓰러진 순간부터 퇴원하기 전까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 내가 얘기해 줄까?"
"응, 해줘"
나는 엄마가 쓰러졌을 때, 옆에 있던 아빠가 두 다리 풀려 주저앉은 이야기부터, 장폐색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까지 상세히 얘기해줬다. 그리고 이어진 그다음 이야기에서 엄마는 소리까지 내며 놀랐다.
"뭐?! 아빠가 엄마 똥 기저귀를 들고뛰었다고?"
"응, 그 새벽에 간호사실로. 너무 좋아서 간호사들한테 알리고 싶어서 막 뛰었대."
그리고 엄만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니깐 엄마, 속상해도 아빠한텐 그런 말 하지 마. 아빠 정말 엄마 열심히 살려냈어."
늘 아빠를 몰아세우기 바빴던 내가 이날 처음으로 아빠의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래, 알았어. 몰랐네 나는"
엄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자리를 옮기셨고 나는 조용히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마칠 무렵, 아빠가 들어오셨다. 바닥을 보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가족을 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애매한 시선이 눈에 띈다. 괜스레 속상한 마음이 울컥한다.
"아빠, 식사하셨어요?"
전에 같지 않은 내 인사에 놀라셨는지, 고개를 홱 들어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곤 정말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아빤 이내 답하셨다.
"아니"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일어나신다.
"그럼 얼른 식사하세요."
엄마는 아직 불편한 걸음으로 느릿느릿 부엌으로 걸어오신다. 그리곤 이내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 한 공기가 올려진다.
아빠는 외투만 벗은 채, 식탁에 앉으셨다. 나도 조용히 그 옆에 따라 앉았다. 이미 식사를 다 마친 후 이지만, 어쩐지 그날은 아빠 혼자 식사를 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엄마도 같은 마음이셨던 것 같다. 엄마도 이내 아빠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아빠는 식사 내내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식탁 위는 어느 때 보다 소란스러웠다. 아빠가 반찬을 집으실 때면, 엄만 슬쩍 찬 그릇을 밀어주셨다. 아빠는 처음엔 흠칫 하시다가도 기분이 좋으신 듯 반찬을 한 움큼 집어 가셨다. 그리곤 목이 좀 막힌 셨는지 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은편에 앉은 엄마가 일어나신다.
"앉아 있어. 내가 떠 올게. 여기 물 드세요."
아빠가 좀 전보다 더 놀란다. 예전엔 물 좀 떠 다 달라는 소리에 이런 것도 직접 못 하시냐며 쏘아대던 나였다. 그런 내가 스스로 물을 떠서 내어 드리니 놀라실 만도 하다.
다소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가 멋쩍게 끝이 났다. 나는 나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곤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엄만 늘 일일 드라마를 챙겨 보신다. 나는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엄마 옆에 있는 게 좋아서 그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 시간에 아빤 늘 안방에 홀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이 날은 조금 달랐다. 안방 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아빠가 거실로 나오신다. 엄마와 나 둘 다 흠칫하였지만, 좀 전에 식사를 하시던 아빠처럼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곤 아빠도 소파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이날은 정말 오랜만에 식구가 모두 모여 온전한 저녁을 보냈다. 내 어렸을 적 기억에나 남아 있던 모습이 꽤 오랜 시간을 거쳐 재현된 것이다.
서로를 향해 소리치고, 울고 싸우던 그 모든 시간들이 엄마의 따뜻한 밥 한 공기에 조금씩 녹아내린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부끄럽고 서툰 마음들이 이제야 아주 조금, 서로에게 닿는 듯하다.
나는 조용히 바란다.
언젠가 불쑥 내 마음에 꽃이 피었 듯, 어딘가에서 아빠의 마음에도 꽃이 피었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 꽃의 향기가 언젠가 엄마에게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