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앞 바다

by 그래

어쩌면 가장 최근의 일 일것이다.


우리 가족은 결혼 후 꾸준히 월 2회 가족모임을 하고 있다.

조카들이 워낙 서로 좋아해서 아이들을 위해 만나다보니, 아예 정기적인 만남이 되어 버렸다.


운전이 서툴렀던 나는 장거리여행은 자신이 없어 미뤄왔는데

아이들이 제법 크니, 동네 놀이터는 시시해 하였다.


날은 더워지고 있었고 물만 보면 뛰어들기 바빴던 아들의 얼굴이 그날따라 아른거렸다.

"우리 이번 모임은 바다에 갈래? 강릉은 그리 멀지 않아서 나 운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안을 받은 부모님도 놀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오빠네 식구도 놀랐고 말 한 나도 놀랐다.


나는 그렇게 인생 처음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친정 아빠가 운전하시는 차를 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괜시리 아이들에게 운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늘 아빠가 한국에 와야만 여행을 갔던 터라, 내심 미안한 마음을 이번에 털어 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서툰 나의 운전이 걱정 된 친정 아빠가 보조석에 앉아 운전을 봐 주기로 하셨다. 친정 아빠는 퇴직 후 운전을 업으로 삼으시는 운전엔 준 베테랑 이시다.

"고속토로 타면 쭉 직진만 하면 돼, 너무 긴장하지 마"

다정한 엄마가 안전 띠를 메기도 전에 나부터 다독이신다. 하지만 성질 고약한 나는 불안감이 올라오며 신경이 예민해 지고 있었다.

"알겠다고!"

그렇게 불안한 여행은 출발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고속도로에 안전하게 진입 했고, 앞차의 뒷 꽁무늬만 얌전히 따라가면 될 일이었다.

욕심없이 스스로 만족하고 있을 때 쯤 옆 차선의 큰 트럭으로 내 앞으로 차선을 변경 했다.

"옆 차선으로 너도 변경해라"

"........"

"큰 차 뒤에 따라 가는거 아니다. 그러니 너도 어서 차선 바꿔. 큰 차 뒤에를 따라가면..."

"내가 알아서 할께!"

버럭 소리치고 말았다. 눈 끝은 흐렸고, 말 끝은 매서웠다. 갑작스런 내 공격에 친정 아빠는 당황하시면서도 화도 나셨을 거다.

"너는 지지배가 진짜 성질머리 하고는!"

"애들 뒤에 타고 있어. 지지배라니! 그리고 나 지금 운전 중이 잖아"

"그만 그만 해 둘다!"

결국 엄마의 중재가 있고 나서야 우리의 불씨는 사그러 들었다. 그제서야 힐끔 뒷 좌석의 애들의 눈치가 보인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차에서의 소란은 우리 셋만 기억할 수 있었다.


계속 된 침묵 끝에 강릉 앞 바다에 도착 했다. 운전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오는 내내 후회 한 것은 선명하다. 왜 운전을 한다고 했을까로 시작 된 후회는 왜 여행을 온다고 했을까로 번져 있었다.

내 행동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 보다는 있었 던 모든일을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쏟아 붓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건드리면 툭툭 하고 삐져나오기 바빴다.

"오빠, 나 도착했어. 숙소 어디로 가야 해?"

"네비를 찍고 오는게 나을거야, 길 찾기가 어렵네"

먼저 숙소에 도착한 오빠는 가야 할 숙소의 주소 대신, 상호명을 불러주며 그 뒷 집이라고 하였다.

일러 준 대로 어찌저찌 찾아 갔지만, 도무지 숙소로 보이는 집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엔 죄다 상가 뿐이었다.

자세히 둘러 볼 겸, 갓길에 차를 대고 잠시 주위를 둘러 보고 있었다.

"빠-앙!"

갓길에 댄 차를 빼라는 뒷차의 경적 이었다. 후다닥 차를 향해 달려 가는데, 보조석에 앉아 있는 아빠가 인상을 팍 쓰고 앉아 있었다.

"뭐해! 똑바로 알아 보지도 않고 어리버리 하게"

그렇게 우린 도로 한복 판에서 2차전이 시작 되었다. 엄마는 숙소를 찾으로 먼저 내리셨으니, 말릴 이도 없었다.

"내가 여길 알고 왔어? 나도 처음이야! 그럼 아빠도 길 좀 찾게 도와 주지 꼼짝도 안하고 뭐하고 계시는 거야?"

"너가 내 말을 듣기냐 하냐? 내가 뭐 말만하면 눈 치켜 뜨기 바쁘면서! 너는 날 아주 뒷방 늙은이 취급하면서 무시 하잖아!"

"내가??? 내가 언제???"

"됐어! 너랑 여행 다신 안 할꺼야! 나 그냥 혼자 서울 갈꺼니깐 너 알아서 해!"


"쾅!"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는 소리에 잠 든 아이들이 깼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은 두 눈만 껌뻑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날 대로 난 나도 그대로 차를 몰고 무작정 출발 하였다.

"너 어디니?"

엄마의 전화였다.

"아빠 숙소에 오셨어. 너도 마음 좀 가라 앉히고 그만 숙소로 와라"

"애들만 보낼께요. 난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라, 지금 숙소에 엄마만 있으니깐 빨리와"

예나 지금이나, 나를 가라앉히고 다독이는 건 엄마뿐이다. 이성이 돌아온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아이들을 숙소로 보내고, 혼자 바닷길을 걸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왜! 나는 늘 아빠랑 이렇게 부딪힐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까. 나는 아빠를 미워 하는 것일까? 아님 너무 사랑 하는 것일까?

산책로 끝길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 보는데, 눈물이 미친듯이 흘러 나왔다. 나는 그날 엄마가 된 이후로 가장 크게 소리 내어서 울었다. 파도가 내 울음 소리를 대신 다 삼켜 주고 있었다.


어느 덧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이 일의 해결사는 나의 엄마다.

"저녁준비 해야지, 엄마 혼자서는 힘들어 빨리와서 밥 해"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라는 엄마의 전화가 반가웠다. 사실 가족들이 모인 곳으로 어떻게 돌아 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부엌 구석에서 엄마를 도왔다.

엄마는 저녁준비 하는 것 외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으신 것 처럼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다. 그 무심함에 나는 안정을 찾아갔고, 그사이 저녁상은 완성 되었다.

"다들 잔 들어!"

엄마의 단호한 건배제의. 상 모퉁이에 앉아있 던 나는 민망하간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가족여행에 운전하면서 온 우리 딸 고생했어, 그리고 그 옆에서 승질 받아 준 남편도 고생했어"

아이들이 웃는다. 식구들도 피식 따라 웃는다. 부서지는 파도에 청승맞게 울음을 쏟아 낸 나의 하루가 해프닝 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가 미안해. 운전 할 땐 예민 해 질 수 밖에 없는데... 우리 딸 여기까지 운전도 하고 대단해"

"제가 죄송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께요"

"와아! 파티다 파티"

아이들이 외친다.


분명,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난 인생 최악의 순간에 서 있었고, 이번 여행이 한 몫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던 엄마와 오바스럽지 않게 나를 안아준 가족들이 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부끄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얼굴이 달아 오르고 마음은 요동친다. 더는 용기 내지 못하고 나는 건배제의를 하며 마음을 건넨다. 잔이 부딪힌다. 눈이 살짝 마주친다.

다 컷다고 생각 했는데, 아니었다. 난 여전히 품안의 자식이었고 결국엔 오늘도 다시 품어지고 있었다. 이 품의 온기가 사랑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분명한것은 난 오늘도 그 품안에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강릉의 하룻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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