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멸치

by 그래

나는 만으로 39살이 되던 해에 베트남에서 살게 되었다.

살 던 집의 짐은 이미 베트남으로 보낸지 오래이다.

집은 텅 비어 있었고, 이 빈집에 당분간은 친정 부모님이 머물기로 하셨다.


분주하게 부모님의 이삿짐을 맞이 한 날.

아이들은 인생처음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것에 기뻐했고

나는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되었다는 낯선 마음을 알아 채리고 있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달. 1달이면 됐다.

나는 아이둘을 키우는 주부이자, 재택근무를 하는 워킹맘이면서

남편과는 떨어져 사는 독박육아 신세 였기에 그 시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좀 편하게 지낼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날 저녁 바로 사라져 버렸다.

춥다며 난방온도를 높이라는 친정 아빠와 중앙난방의 미비한 효과를 설명하던 나는 결국

말이 오가다 감정이 상해 버렸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눈치만 보던 엄마는 아빠에겐 패딩조끼를 건네고 나에겐 방에 들어가 좀 쉬라고 권하셨다.


'쳇! 관리비가 아까워서가 아니라고!'

나는 마저 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삭이는 중이었다.


그 일 외에도 나는 사사건건 아빠와 부딪혔다.

양말은 벗으면 빨래통에 넣어야 한다, 화장실을 쓸 땐 환풍기를 틀어라, 등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 대단해. 어떻게 아빠랑 이 오랜세월을 살았어? 난 잔소리하다가 싸움만 하며 살았을거 같아"

"잔소리 하다보면 나아져. 아빠는 그래도 멸치 똥을 잘 따"

"멸치 똥? 그게 뭘... 요샌 코인육수 쓰지 멸치 똥 따서 쓰는 사람 없습니다!"

고작 이게 장점이라니... 엄마가 불쌍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베트남에 나갈 마지막 출국 짐을 싸고 있었다.

커다란 캐리어 3개는 온통 아이들 짐으로 가득했다. 아이들 입을거, 아이들 쓸거, 비상약 등등으로 말이다.


그때 묵묵히 지켜보시던 아빠가 커다란 검은봉지 하나를 건넨다.

"이것도 하나 가져가"

"뭔데?"

"......"

봉투를 열어보니 깨끗하게 손질 된 육수용 멸치였다. 검은 똥은 싹 발라져 있고, 머리와 몸통이 나뉘어 따로 포장 되어 있었다.

'엄마가 말한 그거구나'

꽉 찬 가방에 '됐어' 라며 거절 하고 싶었지만, 실갱이 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 하나로 멸치는 나와 함께 베트남에 오게 되었다.


베트남 하노이의 겨울은 조금은 쌀쌀 했다.

어떨 땐 놓고 온 패딩점퍼가 그리울 정도로 몸이 으슬으슬 했다.

이럴 땐 따뜻한 국물이 안 그리울 수가 없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먹고 남은 알배추가 보였다. 그 외에도 마늘, 파, 된장 등은 이미 준비 되어 있으니 간단한 된장국 정도는 금방 끓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감칠맛이다. 한인마트에서 산 오래 된 된장은 색도 검게 변했고, 향도 맛도 떨어 질 텐데 그렇게 된장국을 끓이기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된장국을 먹고 싶었다.


그때 생각 난 아빠의 멸치

오자마자 냉동고에 넣었던 것이 생각나 뒤적이니, 커다란 봉지로 두개나 나온다.

잘 발라진 몸통 조금, 깔끔하게 떼어넨 머리도 조금.

팔팔 끓는 물에 넣고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벌써 감칠맛이 싹 도는것 같고 이것만으로 '오늘 된장국은 성공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생각이 났다. 무슨 마음으로 건네셨을까? 이렇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 하셨을까?

이유야 무엇이든 중요치 않았다. 육수를 내다가 아빠께 연락 드렸다.


"아빠, 아빠가 주신 멸치로 된장국 육수내고 있어요. 고마워요. 앞으로 이 멸치 쓸 때마다 아빠 생각 할께요."

"고맙다. 사랑한다"


처음이었다.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메세지를 받은 것은 말이다.

뜨거운 육수가 팔팔 끓고 있었다. 그걸 보는 내 눈도 마음도 팔팔 끓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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