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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랫 Apr 11. 2021

사랑을 하며 배운 것들

'너는 사랑을 해본 적 없잖아'에 대한 반론

 #오늘의고백


늘 말하고 싶었다. '아마도 네가 했던 사랑보다 내 사랑이 더 대단했을걸'이라고.

그런 마음이면서도 늘 사랑에는 '~보다' 따위의 비교급을 써서는 안된다며, 나의 경험'보다'도 그들의 경험이 대단할지 모르니까, 내가 했던 사랑을 조금 더 낮추자고 생각했다. 이미 거기에도 비교급이 깔려있었는데말야.


그래서 나의 대답은 늘,

'응, 나는 사랑을 해본적이 없어. 그게 사랑일리 없잖아'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내 말을 글자 그대로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었을 때 상처를 한 번 더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숱한 인간들 중,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상대를 이해할 수 있기나 할까?'


당신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을 해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만날 수 없대도 같은 하늘 지구별 아래에 사는 것 조차 위안인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게 무슨 사랑이야?'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일주일간의 사랑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한다. 그럼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가슴까지 오던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데에는 같은 행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던 그 사람과의 절연이 이유가 되었다. 사실 바로 잘라버린 것은 아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네가 없어도 난 살 수 있어'라는 용기를 얻었을 때였다. 긴 머리를 '귀밑 2센치'쯤으로 짧게 잘라버리고 얻은 것은


'세상에, 너무 예쁘잖아?'

였다.


고백하자면, 그 사랑이 남기고 간 것은 짧은 머리보다도 더 많았다. 우울감으로 땅 밑에 박혀버릴 것 같던 시절. 몸이 안좋아서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가 없던 나날들. 나는 하루하루 침전하는데, 매일 같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내 일상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말라있던 화분에 물을 주는 것 같았다. 그일이 매일 반복되면서 '너에게 좀 더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포커를 쳤고, 무대 위에서 노래도 한다고 했다. 드라마보는 것도, 노래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우울한 나와 대화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다면 나는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매일 내게 사랑을 나눠주는 너를 위해서,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의 상태는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하거나 무대에 올라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컬러링북을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방에 콕 박혀서 색칠을 해댔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너에게 보여주었다. 너를 보여주고 싶어서 색칠을 했고, 아팠던 몸도 회복시켜나가고 있었다.


그 때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가 더 하고 싶어졌고, '나를 위해서 하는 것 중 네가 좋아할만한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발레를 시작하게 됐다. 레오타드를 고르고 있다는 내게, '나만의 발레리나'라며 불러주던 그가 있어서 주저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게 사랑은 이런 것이었다. 같이 밥먹고 영화보고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부끄럽지 않게 더 좋은 내가 되고 싶어'라는 마음을 먹게 하는 것. '너는 왜이렇게 게으른거야'라는 원망조의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당신을 보며 더 나아가고 싶어지는 내 마음이 내게는 사랑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내가 자립할 수 있는 시기가 되니 재미가 없어졌는지 이별을 고했고,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데 도대체 왜...!'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는 우울한 여자와의 대화를 좋아했던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계획에 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하고 싶어하는 내 긍정성의 등장은 없어야했던 것이겠지.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 우울감에 젖어있기는 했으나, 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 스스로를 정말 많이 깊게 사랑해왔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와 가까워졌으나, 사실 나는 내 안에서 주저앉아버린 나를 만났던 것 같다. 그 안에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원망하며 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해 나를 오해해버린 사람들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찬 어린 날의 내가 있었다. 그와의 접촉을 통해 나는 이 친구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없어도 내가 직접 이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던 날, 나는 머리를 잘랐다. 내게는 이런 것이 사랑이었다.


나는 시간이 아깝다. 나를 나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나를 주저앉히는 사람과의 시간이 아깝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와 재회하지 못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주저앉히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나는 나를 깊게 사랑하였으나, 꽤 긴 시간 동안 스스로 재회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데도 상대방을 만나는 이유는, 그 사람의 모습에서 힘들던 날의 내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아깝다는 마음보다 이 부분에서는 깨달은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나 나의 행동을 보면서 이 사람도 깨닫게 될지 모르잖아. 그런데 그러다보면 알게 된다. 이 사람은 스스로와 재회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야. 스스로를 제대로 볼 생각이 없는 사람인지를.


과거 내게 키스를 퍼붓던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힘 아주 조금만 빼보자, 너무 좋은데, 더 좋을 것 같아'라고 상냥하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가 내 기를 세워주고자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 처럼 확실히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야'라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는 그 말이 너무 충격이었다.


그는 나와 달리 쉴새없이 연애를 해왔던 사람이었다. 늘 주변에는 여자가 있었고,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여자가 없었다고? 그럼 그들은 대체 만나서 무슨 말을 한거지? 오늘 점심 뭐먹었는지, 요새 날씨가 좋으니까 주말에 놀러가자는 소리말곤 한게 없던걸까? 키스는 매일매일 했을거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그렇게 만났다면서도 요령이 하나도 안느껴지는 그 키스를 통해 '아 이 사람, 나쁜은 사람 아닌데 서로 솔직하게 생각 터놓고 얘기한 적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스킨십에 대한 대화도 솔직하게 하지 못한다면 다른 복잡한 이야기들은 당신이 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만나는 여자와 서로 '애인'이라는 이름만 붙여놓았을 뿐 그저 맛있는데로 밥먹으러 가고, 땡기면 스킨십하는게 전부였겠네, 그것도 서로 무슨생각하는지 몰라서 별로 만족스럽지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그런게 '애인'이라면 난 필요없을 것 같아 !! 그치만 나는 그를 좋아했으니까 당신의 우주를 배우고 싶었고,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어보였으니 내가 가르쳐주는 것도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지만, 우리는 합이 잘맞는 페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ㅋㅋ)


나는 사랑을 통해서 서울과 서울 근교 여기저기 맛집이 어디있는지를 알고 싶은게 아니야. 기념일에 호텔투어를 하며 '내 또래 남자들은 이런 선물을 좋아하는구나'를 배우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인기가 많아지는 처세술 따위는, 진퉁한명만 만나면 그 뒤로 다 귀찮아질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다 부수적인거야. 어차피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싫어도 배워야할 것들이다. 내가 사랑을 통해서 원했던 건 내 세계의 확장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세계도 나를 통해 확장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사람이 내 세계를 확장시켜줄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이 사람을 확장시켜줄 노력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인지는 이 남자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오늘은 퇴근을 몇시에 했는지를 듣는다고 전혀 알 수가 없어. 나는 당신과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이런 얘기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더러 피곤하게 군다고 하면서도 왜 날 좋아해주는지, 왜 나에게 맞춰주는지 알아?

난 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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