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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랫 Jun 11. 2021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그릿'

내가 살면서 받아본 가장 구체적인 칭찬

올해 생일을 맞아 같이 폴을 타던 J언니에게 '그릿 -IQ, 재능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이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주고 싶은 책이었다고, 자기계발서지만 힐링서였다면서 나도 읽으면서 힐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J언니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 이 책이 내게도 힐링도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책을 다 읽어보니, 이 책이 나에게도 힐링이 될 거라고 생각해준 다는 것 자체가 내게 너무 큰 칭찬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 그래도 나 잘살았구나'하며 뿌듯했고, 주저없이 이런 책을 골라 선물해준 언니에게 무척 고마웠다.

기존에 모르던 그릿(Grit)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다양한 연구사례를 설명해놓은 책이었기 때문에, 어렵진 않았으나 술술 읽히는류의 책은 아니라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눈물이 나더라. Grit이란,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투지'나 '기개'라고 적혀있는데, 이 단어를 이 책의 작가인 앤젤라 더크워스가 개념화했다고 한다. 투지, 기개, 열정, 끈기.. 다양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고, 사실상 그 모든 것들이 섞여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야한다. (딴 소리지만, 내게는 저 단어들이 다 같은 말 처럼 들려서,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쓸 때 '열정'과 '끈기', '투지', '도전정신'등을 각기 다르게 어필해야하는 부분이 너무 어렵다.ㅠㅠ)


이렇게 말하면 좀 부끄럽지만, 나의 삶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열정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스스로 '열정이 넘치는 성격입니다'라고 말하기는 너무 부끄럽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돌아봤을 때 내 삶의 방식은, 열정이 넘친다고 하기엔 너무 사소해보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발레도, 그냥 하기로 했으니까 이왕하는거 제대로 하자는 마음일 뿐이고,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 이거 없으면 안돼!'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심지어 가기 싫은 날도 있고, 기초트레이닝을 하기 싫어서 '아휴 하기 싫어'라며 매트에 올라가 훈련하는 날도 많다. 그런 내게 열정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이 바로 '그릿'이고, 열정이자 끈기, 투지, 도전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J언니는 내가 보기에 객관적으로 머리도 좋고 스펙도 좋은 사람인데, 늘 내게 '너 정말 똑똑해, 그리고 열심히 해'라고 말해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언니 주변에는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똑똑' 축에도 못낄거 같은데 이런 칭찬을 해주지 싶어 의아했다. 언니에게 '언니 난 진짜 머리가 나쁘다 못해 빡대가리야' 라고 했는데 언니가 그 말을 이 책 한 권으로 이렇게 소상히 반박하고 싶을 만큼 내가 '언니 난 재능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안타까웠나보다. (ㅋㅋ 고마워 언니)


이 책의 마지막에는 나를 울컥하게 했던 이런 말이 나온다. 

천재란 노력하지 않고도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아버지 말('네가 천재는 아니잖니')이 맞다. 나도 아버지도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천재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부단히 탁월성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아버지도 천재고, 나도 코츠도 천재다. 그리고 여러분도 부단히 노력할 마음만 있다면 천재다.

나는 '노력하지 않고도 모든 걸 쉽게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하기로 했으면 꼭 끝을 보고 싶고, 그 끝까지 잘해내고 싶다. 내 삶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는 사람들의 눈에 내가 그릿이 강한 사람으로 보이리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도, 안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잘 된다고 게으름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언니가 내게 '너 정말 똑똑해'라고 한 말이 이런 뜻이라면 맞아, 나는 천재가 맞을지도 몰라! 


어릴 적 부터 섬유근육통에 시달리면서 어디선가 들어본 코끼리 실험을 종종 떠올린 적이 있다.(정확한 실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끼리가 아직 힘이 약한 새끼일 적에 도망가지 못하게 말뚝에 묶어놓고 바닥에 전기충격을 주며 키우면, 말뚝을 부술 만큼 힘이 세져서도 그 말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의 전기충격에 무력하게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아플 때에,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고서도 아무 것도 되지 않아서 내가 나중에 무력한 인간이 되면 어쩌지 늘 두렵고 무서웠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면 어쩌지?


아파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았지만 내 마음으로 포기한대도 자살을 선택하거나 목숨이 끊기는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내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팠어도 죽음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면 내게는 무조건 살아나가는 선택지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따위 몸으로는 공부를 '정말 잘하는' 학생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최고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 사실이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목표를 변경하는 것이, 완전히 포기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성적으로 대단한 칭찬은 못받더라도, 우리학교에서 가장 성실한 학생을 꼽으라면 내가 생각나게끔하고 말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선생님들이 다 나를 '가장 성실한 학생'으로 꼽아주실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당시의 나에게 자신이 있다.


고난을 극복하며 그릿이 강화되지만 극복하지 못할만큼의 통제불능 상태를 겪으면 오히려 무기력해진다는데, 사실 나는 그 때 내가 고난을 '극복' 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나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러가지 불편한 증상들이 있고, 여전히 그 증상들을 느낄 때 마다 과거의 모습이 떠올라 두렵다. 질병이란 '통제불능'의 영역이다. 질병의 극복이라면 완치가 되어서 증상자체가 없어져야하니까 나는 해당이 되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두려움에 굴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극복'이라고 해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은 그 때만큼 통제불능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또한 내가 포기하지 않았던 덕분이니까!


책에서 특별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발레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발레를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써, 공감되고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책에서는 '특별활동'이라고 말했는데, 성인이라면 일이나 학업과 무관한 취미활동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원래도 끈기가 있는 성격이긴 하지만, 취미생활을 하면서 그 끈기가 배가 되기도 했다. 발레를 하기 전에는 헬스를 4년 정도 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운동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었고, 내 몸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던데다가 나를 가르쳐줄 트레이너 또한 없었다. 그 4년의 시간 동안 내가 신체적으로 얻은 것은, 좋은 트레이너와 1년간 피티를 받은 사람보다 적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4년의 시간동안 운동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헬스장에 가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신체적으로 얻은 것이 없대도 장장 4년이다. 그 동안 내 체력과 운동신경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 그 시간은 내가 발레를 하든 폴댄스를 하든 습득력이 빨라지도록 만들어주었다고 자신한다. 어차피 난 전공이 아니다. 천천히 배워도 괜찮으니까, 그 4년의 시간이 맨땅에 헤딩하며 허송세월 한 행동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운동신경만 좋아진 것은 아니다. 운동을 배우고 하는 시간 동안 나는 내 몸의 모양과 근력의 변화를 느끼면서, 안될 것 같던 일들도 시간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발레를 배우면서는 그 깨달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만 배우면 동작은 제대로 할 수 있는 헬스에 비해, 발레의 경우 발레리나 흉내라도 내려면 성인취미로는 몇 년의 연습을 거쳐야한다. 그런데 그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안되던 동작이 어느날 갑자기 될 때, 한바퀴 도는 것도 어려웠던 턴을 연습하다보니 두바퀴가 되는 것을 보면서 헬스나 발레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입사를 한지 얼마 안돼서 일이 익숙하지 않아 실수가 빈번할 때에 나는 내 스스로를 멍청한 쓰레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대신, '두고 봐, 1년만 지나면 이거 다 껌처럼할 수 있어. 주눅들지마, 스칼랫! 주변사람들도 신입이라 손가는게 많아서 짜증이 나는 거지, 나의 자질을 의심하느라 화내는 건 아닐거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테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든, 서투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면 결국 시간은 나의 편이 되어 내 자신감과 자신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확신한다.


내가 퇴사를 고민하며 앞날이 걱정된다고 우는 소리를 할 때 발레학원 언니가 한 말이 있다. '우리학원에 너 같은 사람 없어. 넌 더블(발레의 턴인 피루엣을 두바퀴도는 것)을 돌아. 훼떼(돌면서 다리를 펼쳤다 접었다 하는 발레턴)를 5번을 한번에 해. 근데 뭐가 걱정이야? 내가 봤을 때 너, 지금 몸값 천만원 올리고 부사수도 둘 수 있어'


아마 발레를 모르는 사람들은 몸 값 천만원 상승에 부사수를 두는 것 피루엣 더블, 훼떼가 무슨상관인지 이해가 잘 안될거다. 그런데 그 언니는 내가 더블과 훼떼를 돌기 위해 수업 전 누구보다 빨리 와서 트레이닝을 하고, 끊임없이 동작을 연구하는 걸 알고 있는거다. 발레 하나를 해도 그렇게 하는 너는, 어딜 가나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격려였다. 내 삶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발레를 하는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격려이자 칭찬이었다.


'맞아요 언니, 저 더블돌고 훼떼 5바퀴 돌아요. 그러니까 이제 걱정안할래요. 뭘 하든 잘 할 수 있을거에요'

(사실 훼떼는 9바퀴도 돌아본 적 있지만!ㅎㅎ)


이렇게만 말하면 나는 그릿이 충분한 사람 같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도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재능이 없어서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는 숫자에 약하다. 그냥 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취약한 수준이다. 수개념이 약해서 살아가기 불편하다고 느낄 때도 종종있다. 나는 회사에서 약 4년간 영업관리 업무를 맡아왔는데, 자소서엔 절대 안쓰는 내용이지만 영업관리 업무를 하며 실수하는 것들은 거의 전부 숫자다. 억단위인지 천만단위인지 헷갈리고, 합계가 빨리빨리 눈에 안들어오고, 그런 식이다. 숫자가 부실하니 학창시절 내내 수학과 전쟁이었다. 엄마는 늘 '넌 숫자에 약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책을 읽다보니 '사실은 남들도 숫자는 나만큼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숫자에 약하다고 낙인 찍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숫자에 약하니 학창시절 내내 수학으로 고생한 건 사실이다. 그치만 교재를 쌓으면 내 키만큼 높아질 정도로 많은 양의 인수분해를 하니 100명 정도 되는 보습학원에서 인수분해를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학을 못했지만 수능 3등급은 나왔다. 3등급이면 내 기억으로는 상위 20퍼센트 안쪽인데, 그럼 내 밑으로 나보다 수학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된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내가 숫자에 약하다고 할 수 있나...? 엄마는 '그 80프로의 사람들이 너만큼 노력을 하면 너보다 훨씬 잘할거야'라고 했지만 나는 반론했다. '그런데 그들은 나보다 더 할리가 없으니 그 가정은 할 필요가 없어. 재능과 노력을 섞어서 점수를 만들어내는 거잖아. 엄마, 나는 생각보다 수학을 못하지는 않았던거야!'


앞으로도 나는 아마 영업관리 커리어를 이어나갈거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숫자에 약한 것은 살아가면서 불편하다. 그래서 숫자에 조금 더 밝아지기를 늘 소망하고 있고, 그걸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 아, 포기하지 않으니 또 언젠가 되겠지?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 대신 대기업의 인적성을 공부하면서는 정말이지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수학은 괜찮았는데 도형 돌리기는 정말 못해먹겠더라. 이건 노력을 한다고 해서 될게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노려을 하려거든 이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선생님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생님을 찾을 방법을 몰랐다. 재능이 없어서 못하는게 아니라 방법을 잘 모르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를 경험하면서 '연습하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된다'는 것은 이미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근데 다만, 내가 숫자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한대도 어느날 갑자기 통계학자가 될만큼 수에 밝아지거나 도형돌리기에 정통한 선생님을 만난다고 세상의 모든 도형돌리기 퀴즈를 다 풀어내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근데 뭐. 그렇다고 내가 실망하지 않을 것도 안다. 그냥 어제보다 나아진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거니까, 만일 잘 안된다면 할만큼 해보고 미련없이 후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 말미에서 또 아, 이거구나 했던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이 될 수 없다면 물리학을 공부할 자격이 없는가? 우사인 볼트가 될 수 없다면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가? 어제보다 조금 빨리, 조금 오래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가? 이는 어리서근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딸이 내게 "엄마, 나는 절대로 모차르트가 될 수 없으니까 오늘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해줄 것이다. "너는 모차르트가 되려고 피아노를 연습하는 게 아니란다." 

내가 아무리 발레를 한대도 강수진 같은 발레리나가 될 순 없다. 운동을 아무리 한대도 장윤주보다 몸이 예뻐지는 날은 고사하고 그 몸 같아지는 날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이유 때문에 한동안 발레를 배운다는 말을 부끄러워서 못하고 다녔고, 운동을 주 5회, 매번 두시간 씩 하면서도 운동을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나는 강수진 같은 발레리나가 되려고 발레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장윤주처럼 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어릴적 프린세스메이커3라는 게임을 하면서 내가 키우던 딸을 예절교실에 보내면 '보트라'라는 예절선생님이 나온다. 15일간의 학습을 마치고 집에 갈 때, 보트라 선생은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제보다 나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나아가게'라고 말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적이었지만 나도 무엇을 하든 어제보다는 나아져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얼마전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예능인 유퀴즈에서 86세 플랭크맨이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 7분간 플랭크를 하고, 330개의 스쿼트를 하고, 20층이 넘는 건물의 계단을 오른다. 그러면서 매일 같이 외국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는 '여전히 너무 재밌어'라고 하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 처럼 늙고 싶다. '나는 너무 늙었어', '배울만큼 배웠어', '해볼만큼 해봤어'라며 핑계대지 않는 삶.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어제 내가 해야할일을 했던 것 처럼 오늘을 살아내고 싶다. 나에겐 그게 끈기고 그런 끈기야 말로 삶에 대한 나의 지치지 않는 사랑이자 열정이다.


'나는 열정이 넘쳐!'라는 말이 부끄러우니 조금 다르게 표현해봐야겠다. '나는 내 삶을 정말 사랑해. 내 삶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 사랑하기 때문에 대충할 수 없어. 내게는 늘 좋은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일 나쁜일이 일어난대도 나는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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