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ulti ARTgas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칼랫 May 03. 2021

라 바야데르, 발레와 힌두의 조합?

2021년 국립발레단 4월 정기공연 '라 바야데르'

상당히 오랜만에 공연에 대해서 감상평을 쓴다. 라바야데르 이전 국립발레단의 해적이 있었는데, 해적에 대한 감상평은 업로드 하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해적의 남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다. ^^)


라 바야데르는 인도라고 해야할까, 정확히는 '힌두교'를 신봉하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발레극이다. 그래서 의상들도 일반적으로 '발레'하면 떠올리는 나풀거리는 긴 로맨틱 튜튜스커트나 쟁반처럼 넓게 퍼진 클래식 튜튜튜와는 달리, '무희'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의상들이 많이 나온다. 원래 발레의상은 딱 달라붙어 노출이 많은 느낌이지만, 라바야데르의 경우는 진짜로 복부를 드러내거나, 남자들의 경우 상의탈의가 많아서 다이어트(=몸매관리)를 더... 더욱... 많이 해야하는 의상이라고 들었다.

지젤(좌), 잠자는 숲속의 미녀 요정들 의상(중앙), 라 바야데르(우)

위의 이미지인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경우에는 궁전의 배경도 과거 유럽의 궁전을 방불케하지만, 라바야데르의 무대는 조금 더 동양적인 느낌이다. 그런데 그 동양..이... 한국, 일본, 중국 같은 극동아시아나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뭐랄까, '터키', '인도', '이란'... 요런 느낌..


라 바야데르의 '바야데르'는 '사원의 무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는 불란서말 관사겠쥬?ㅋㅋ) 그러니까, 한국어로 바꾼다면 극의 제목은 '무희'정도가 됐을텐데, 그냥 원제를 그대로 쓰는 듯 하다. 사실 내 경우에는 이 제목이 어려운 말(..)로 들려서 어려운 발레극일거라고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라 바야데르 포토월

하지만 미리 말해두자면, 생각보다 발레는 어렵지 않다. 간단히 말해서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를 통해 보는 드라마들이나, 아내의 유혹, 스카이캐슬, 완전한 부부,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드라마의 구버전이 발레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이 설마, 그래도 '클래식'하고 '정적인' 발레인데, 발레가 '막장드라마'라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이다.

이름을 한 번 쯤 들어봤을 '지젤'은 남주가 긍정발랄하지만 병약한 시골소녀와 부우잣집 아가씨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는데, 그 시골소녀가 그걸 알고 뒤로 넘어가 죽어서 귀신이 된 얘기다. '백조의 호수'는 '아내의 유혹'처럼(내용은 다르지만) 백조와 흑조가 1인 2역을 한다. 점찍고 오니 와이프를 못알아봤던 한심한 남주나, 얼굴 닮았다고 흑조를 백조로 착각해서 덥썩 결혼하겠다고 하는 멍청한 남주나 뭐 또이또이 아니겠는가(^^.. 호호)


라 바야데르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힌두사원의 아름다운 무희 (반드시 아름다워야한다. 그녀는 탑이어야 한다. 이거시 바로 막장드라마의 공식이니까.)와 꽁냥꽁냥하던 잘나가는 전사 솔로르, 그리고 그 솔로르를 차기 남편으로 점찍고 빼앗으려고 하는 공주 감자티의 이야기다. 그래서 삼각관계냐하면 아니, 사각관계다. 무희가 아름다운 이유가 뭐겠어? 그 힌두사원에 있는 제일 노옾으신 사제의 정신을 후리기 위해서지.. 사제라는 놈이 여색에 빠져(...) 니키아에게 '나랑 만나주면 이 나라의 모든 걸 다 갖게 해줄게'라고 니키아를 꼬신다. 그러나 드라마의 여주들이 모두 그러하듯 '아니야, 너는 사제고, 나는 무희야.' 따위의... 클리셰를 뿜뿜하며 '나는 진실한 사랑을 지킬거야!'라고 솔로르에게 일편단심을 보여준다. 근데 또 여기서 남주 솔로르가 '맞아맞아 사랑은 일편단심이지!'하면 막장드라마가 재미가 없어서, '하, 난 더 높은 곳으로 갈거야!'라며 감자티와 니키아 중간에서 저울질을 하는 내용.

호오,, 이미지가 깨지는 건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ㅋㅋ

아무튼 내가 본 날은 2021년 4월 29일 목요일 7시 30분 저녁 공연이었다. 주역인 무희 니키아역에 신승원, 솔로르역에 허서명, 감자티 공주역에 심현희, 그리고 사제였던 브라만은 송정빈이 연기했다. 내가 국발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 무용수는 신승원, 남자 무용수는 허서명인데 이 둘이 페어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던 공연이었다. (원래는 이 날,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인 김기민과 다른 러시아 발레리나가 공연을 하기로 공지가 되어있었으나, 그 두 사람이 코로나 때문에 입국할 수 없었다. 이것을 국립발레단 측에서 아몰랑을 시전하면서 캐스팅이 갑작스레 변경. 내가 발레에 입문했던 것은 다 김기민의 영향이므로 너무 보고 싶었으나, 국발 남자리노 중 서명리노는 내 최애니까... (ㅂㄷ) 기대하고 갔다.)

변경된 캐스팅ㅠㅠ 흑흑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발레공연은 국립발레단의 마타하리였는데, 그 때 마타하리역을 승원리나가 연기했었다. 마타하리는 발레관람 초보였던 내가 보면서 재미를 느끼기엔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어렵고 헷갈리는 내용이었으나 승원리나의 폴드브라(=팔의 움직임)는 인상적이었다. 스토리를 따라기 못했다고 할지라도, 마타하리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감동받았던 공연이었다. 역시 라바야데르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폴드브라를 보여주는데, 함께 갔던 언니는 '저 무희는 관절이 없는 것 같이 움직여'라며 감탄했었다.


믿고보는 서명리노, 점프를 뛸 때마다 조그맣게 탄성을 질렀다. 테크닉이 끝나고 나면 박수치고 싶었는데 예당에서 비말튀기면 안된다고 웬만해서는 소리지르지말고 박수만 치랬다 흑흑... 특히 쥬떼 앙투르낭(아래 영상 첨부)이 나올 때 마다 소름이 돋았다. 점프를 하고 공중에서 머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조금 더 신경써서 다리를 더 벌리면서 공중에서 공중으로 다시 한 번 더 뛰어오르는 느낌. 그런데 사실 '짧은' 시간이 아니고 '부왕!'하고 무지막지한 높이로 날아오르는데, 너무 높게 날아올라서 공중에서 한번 '쨘!'하고 멈추는 느낌이다. 그 멈추는 느낌이 드는 순간, 한번더 스플릿을 쭉, 보여주고 천천히 내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tSuxtmqssHQ

줴떼 앙투르낭이 뭔지 궁금하다면 플레이!

현희리나는 내가 그렇게 주목하던 무용수는 아니었는데, 감자티 접신했네... 국발 공연을 보고 나서 인스타에 사진과 후기를 올리며 #국립발레단 을 태그하면, 현희리나와 현희리나의 남편인 호현리노가 태그타고 나타나 좋아요를 빵빵 눌러주는 좋아요정을 해준다. 그 둘은 내가 보아왔던 일상사진에서는 그냥 미소천사였는데, 니키아의 연인을 뺏는 표독스럽고 야멸찬 감자티의 현희리나는 내 기억속 좋아요정이 아니네,,(ㅋㅋㅋ) 니키아의 얼굴을 보고 '헐 뭐야, 생각한 거 보다 더 예쁘잖아?'라고 놀라는 모습도, '솔로르에게서 떨어져!'라는 모습도 모두 잘어울렸다. 그런데 또 야멸차기만 한 건 아니고, 예쁘고, 사랑받는 공주의 모습도 보여줘야하기 때문에 여러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어야하는데, 그게 다 잘 어울렸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는 니키아보다 감자티가 재밌지 않을까 싶다.


주역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지만, 또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보라면 북춤이었다. 클래식 발레는 여러모로 논란거리가 많다. 워낙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까지 공연하는 만큼, 현대사회에서 보기에는 불편한 내용들이 많다. '해적'에는 '오달리스크'(터키 궁전 밀실에서 왕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기하는 궁녀들)가 나온다. 애초에 스토리 자체도 '노예시장으로 팔아치우기 위해 납치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고 말이다. 라바야데르 또한 '인종차별'이라는 논란거리가 있었다. 이 인종차별 코드를 북춤으로 대신했다고 생각한다.

라바야데르의 흑인분장 (볼쇼이발레단)

라바야데르에는 흑인 캐릭터들이 나온다. 사실 왜 힌두사원이 배경인 공연에 흑인이 나와야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여기에 그 당시 서구권이 동양에 대해서 얼마나 미개하고 편협한 시각을 가졌는지까지 느껴졌다.) 세계적으로 발레단들에는 흑인이 압도적으로 적다. 흑인 캐릭터 또한 나는 라바야데르에서 처음 들어봤다. 그만큼 적다는 뜻으로 인식하면 될 것 같은데, 이 흑인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백인들이 흑인분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이 분장이 논란거리로 불거졌다. (기사를 찾아보니, 몇년전 우리나라의 국립발레단이 흑인분장을 했고, 이에 인종차별이라며 비판했던 기사가 있었다. 참고: 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603316764A&sns=y)


그런데 이러한 인종차별코드에서 벗어나 북춤으로 대체를 했는데, 이 북춤, 정말 너무 핫했다. '발레가 핫하다'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실제로 핫했다. 사냥에 일가견이 있는 부족의 전통춤 같았은 느낌이었는데, 내가 본 회차의 무용수들의 피지컬이 그야말로 압살이었다. 북춤의 여자를 맡았던 정은영은 발레리나들 중에서도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며 몸매가 대단한 무용수로 정평인 사람이고, 남자무용수인 이유홍은 발레리노들 중에서도 웨이트트레이닝을 엄청나게 하며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무용수였다. (제가 또 이런분들 조와해오,,) 북춤모두는 레게뮤지션, 레게 댄서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압살피지컬의 저 둘과 함께, 북춤의 리더였던 배민순의 표정도 너무 좋아서 끝날 때까지 눈이 갔던 기억이 난다.

북춤의 핫피플들. 출처는 발레리노 김경식님의 트위터 (@ballerino_KS)

약간 아쉬웠던 포인트라면, 내가 본날의 쉐이드 트리오였는데, 춤은 아름다웠으나 김희선이 그 트리오까지 껴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직전 물동이 소녀에서 완벽하게 캐릭터를 소화했는데 다음 막에서 굳이 트리오에 또 들어간다고...? 게다가 그 트리오의 두사람이 키가 희선리나와 차이가 나서, 춤이 문제가 아니라, '왜 피지컬이 어울리지 않는 저 셋을 한팀으로 묶었지?'라는 의문이 드는 캐스팅이었다.

쉐이드

슬슬 내가 야매 발레팬이라는 느낌이 든다. 공연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의 감상문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남들은 모두 3막(감자티의 계략으로 니키아가 죽어서 망령이 되고, 여러 망령들이 함께 나와 춤을 추는 귀신의 세계...라는 내용 -이 코드가 제일 막장이지만-)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는데 나는 3막은 지루한 감도 들었다. (다들 하얀색 로맨틱 튜튜만 입고 나오는데 조명도 시퍼렇고 다들 귀신역(망령)이라 표정도 상큼발랄하지 않다ㅠㅠ) 물론 군무는 늘 대단해서, 칼각이 맞는 군무를 보면 신기하고 감동 받기는 하지만, 색깔이 다양하지 않은 공연은 내게 조금 심심하다ㅠㅠ (그러나, 만일 호두까기 인형을 본 적이 있고, 눈송이요정들의 군무를 좋아한다면 3막 또한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간략한 마무리. 2021년 4월 29일 목요일, 라바야데르가 끝난 예술의 전당에서 나오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우산이 없던 나는 답도 없이 택시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잡히지 않았다. 우연히 수도승 마그다비아를 연기했던 발레리노 변성완 또한 우산이 없다고 비를 피하며 지인의 픽업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작정 내가 말을 걸어서 인사하고 사진도 찍게 되었다. 그 픽업차량은 국발의 전 수석발레리노인 정영재의 차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완리노가 날 그 차에 태워주시고 영재리노가 방배역에 내려주심(???????)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공연이 되었다. 차안에서 무슨 얘기했는지는 비밀. - 끗.

키크고 친절했던 변성완리노


p.s. 발레보다보면 별일이 다 생겨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옥수수'를 낭비하고 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