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아직 만 5세 꼬꼬마였지?

by 레드카피


아이들과 계속 있다 보면 나이를 잊어요. 제 나이도 잊는데 아이들 나이도 잊습니다.


수 백일을 말 맞추고 지내는데 당연히 말이 잘 통하죠. 말이 잘 통하면 동년배라는 착각까지 들어요. 그렇게 이 녀석들과 대화가 되니까 '아이'가 아니라 다 큰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둘째 녀석이 앵~ 하고 울었어요. 오랜만에 울었습니다. 이유인즉슨, 가지고 노는 숫자 나무블록에 8이 없다는 거였죠. 쥐똥만 한 나무블록 때문에 아이 입이 팔자가 되더라고요.


"엄마가 똑같이 써줄게."


헌데 아뿔싸, 검은색으로 써야 하는데 제가 손에 들고 있던 건 진보라색 네임펜이었어요. 아이는 더 울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그래도 비슷하지 않아? 색깔만 그렇지 모양은 완전 8이야."


그래도 디자인과 전공 출신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8인데 속아줄 줄 알았어요. 천만에요. 나무블록을 새로 사야 한다는 고집이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새삼 깨달았어요.


이 녀석, 아직 만 5세 꼬꼬마구나


평소에 굉장히 형님처럼 구는 아이예요. 짜증 내는 법도 별로 없고 친구들에게도 타이르는 표현을 잘하고요. 누나가 떽떽 댈 때도 오히려 차분하게 설득하거나 져주는 스타일인 우리 둘째.


그런데 쬐깐한 나무블록 때문에 입이 팔자가 되어 우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아이가 아직 덜 큰 거 같아서 내심 좋기도 했어요. 요즘 너무 빨리 철들고 너무 빨리 크는 거 같아서 서운했거든요.


"에구에구~ 우리 아들, 엄마가 네임펜 까만색 사서 뒤에다가 다시 똑! 같! 이! 8 그려줄게. 약속해."


아들내미는 손가락을 걸고 사인하고 복사까지 한 후에야 팔자입이 조금 돌아왔습니다. 웃음이 자꾸 나는데 참느라 혼났네요.


유치원에서나 제일 형님반이지 집에서는 어김없는 막내였어요. 철든 모습의 아이들도 뿌듯하지만 가끔 이렇게 뜬금없이 앵앵 우는 모습도, 여전히 귀엽습니다.


당분간 계속 만 5세 했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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