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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Aug 13. 2023

037.  갑작스런 바다가 엄마는 낯설어서

내년에는 바닷물에 몸을 담그리


벼락치기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일주일 전까지 숙소도 잡지 못한 채 안절부절 하던 찰나, 지인의 지인 찬스로 간신히 호텔을 잡았다. 나이 들수록 인생은 인맥이다. 어쨌든 폭염 속에 우리는 강원도로 향했다.


"엄마, 바다 있어?"

"그으럼~ 우리 가서 바다에 퐁 발 담가 보자."


하지만 나도 남편도 바다 앞에서 소심해졌다. 해변에 도착한 나는 힐끔 힐끔 다른집 상황을 곁눈질 했다. 바다 속에 풍덩 뛰어 들어 해초와 하나된 아빠들. 물개마냥 바닷물과 모래를 왔다갔다 하는 엄마들. 그 사이에서 파도처럼 떠다니는 아이들까지. 하지만 난 아이들과 바닷속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헀다.


분명 제제제제제작년쯤 제주도 바다속을 잠수하던 나였다. 그런데 불과 몇년만에 이런 겁쟁이가 되어 버리다니. 바다도 연인과 비슷한 건지 몸이 멀어져있던 동안 마음까지 멀어진 듯 낯설었다. 하지만 바다까지 와서 아이들 발가락에 물 한번 축이지 못할 순 없었다. 바다를 싫어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달려온 남편과 바다가 갑자기 낯설어진 나는 로보트마냥 삐걱대며 아이들을 바닷가로 이끌었다.

연일 폭염인지라 물은 차갑지 않고 시원했다. 오히려 그 온도가 아이들에게는 익숙했는지 금새 발을 담갔다. 수영장 물에나 익숙한 5살 아이들이라 바다 앞에서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곧 엉덩이를 모래 바닥에 붙이고 삽질과 물질을 시작했다. 함께 하지 못하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내 어린 기억 속 바다는 아름답다. 시원하고 정감이 가득하다. 모두 아빠 덕분이다. 아빠는 바다수영을 좋아했고 어린 나는 덩달아 바다에서 튜브를 타곤 했다. 하지만 지금 38살이 된 내 앞에 있던 바다는 왜 그리 낯설었는지 모르겠다. 바닷물을 보며 옷 말릴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보며 씻길 생각을 했다. 아, 걱정이 앞섰구나 깨달았다.

마냥 바다를 뛰어다닐 때가 아닌 것이 차이였다. 모래와 바닷물로 범벅인 아이들을 챙겨 숙소로 돌아가는 그 여정이 처음인지라 바다마저 낯설었던 거였다. 픽 웃음이 나왔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됐나 싶었다.


엄마가 겁쟁이가 되면 아이들의 추억에 방해가 된다. 엄마가 무서워서 피하면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던 한조각을 놓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미안해졌다.

"내년에는 우리 저 바닷물까지 들어가보자. 엄마랑 같이."

이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다시 오지않을 순간들을 놓치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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