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드카피 Sep 21. 2023

038. 제 나이로 보이는 게 싫은 나이



"엄마 나 빨리 8살이 되고 싶어."

자기보다 언니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언니들처럼 되고 싶은 시기가 첫째에게도 왔다. 

"8살이 되면 뭐 할 건데?"

눈을 반짝이는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으응~ 게임도 하고 싶고~ 혼자 친구집에도 가고 싶고오~ 머리 색깔도 바꾸고 싶고오~"

아이가 말하는 대부분은 어른인 내가 듣기에 소박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 본인에게는 매우 거대하고 대단한 일이다. 이 대화의 마무리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고 맺음 했다. 그리고 그 맺음 끝에 난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해 버렸다. 제 나이로 보이는 게 싫은 나이를.


얼마 전, 만 나이 제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고작 몇 개월이지만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 중 앞자리 3을 조금 더 붙들고 있을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숫자 3 뒤에 숫자 9가 붙기 전까지는 나도 나이 듦에 대한 로망이 더 컸다. 어떤 하나 또는 두 가지 정도 분야를 파고들어 전문가 소리를 듣고 싶다는 로망. 20대, 30대 어른이들의 눈에 우아한 40대가 되고 싶다는 로망. 인생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노련미와 여유를 갖추고 싶다는 로망. 그러나 그 핑크빛 로망들은 숫자 9를 만나는 순간 잿가루처럼 흩어져버렸다. 내 마음속에서.


둘째를 낳기 전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이 나를 제 나이로 보는 일이 드물었다. 결혼했다는 말에 놀라는 반응이 있었고 아이가 둘이라는 말에 경악하는 반응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내 얼굴과 아우라는 내 나이와 동등한 위치를 찾은 듯하다. 누가 봐도 30대 중반, 누가 봐도 30대 후반, 그리고 그렇게 변화했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39살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며칠 전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 날이 있었다. 만 나이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나이의 앞자리 수에 4를 가질 10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생각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작은 거울 속 모습에 대한 한숨이었고 그 한숨은 내가 내적으로, 지적으로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듯한 느낌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런 공허한 새벽을 보낸 것 같다. 


이 생각을 아름답게 정리하려면 30대에 못한 것들, 아쉬운 것들을 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차곡차곡 쌓아가던 커리어를 버렸고, 생전 처음 엄마라는 직업을 가졌고, 정신없이 아이 둘을 건사하다 보니 6년이란 시간이 사라지듯 흘렀다. 30대의 절반 정도를 흘려보낸 이 시기를 어떻게 놓아야 할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는, 제 나이로 보이기 싫은 이 기분이 내 나이를 사랑하게 되는 그 감정으로 변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제 나이로 보이기 싫은 딸과 제 나이로 보이기 싫은 엄마. 피식 웃음이 날 만큼 서로 다른 속마음이지만 이런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즐겁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 40대를 사랑하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 나이 38살. 아직 나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37. 갑작스런 바다가 엄마는 낯설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