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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Jun 19. 2024

047. 1년에 10cm, 나보다 너무 빠른 너의 속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은 건 애인이 아니었어



너무 빨리 자란다. 언제 크나 언제 크나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너무 빨리 자란다. 동글동글했던 아기 얼굴이 점점 사라지는 자리에 소녀 같은, 어린이 같은 모습이 자리 잡아간다. 그래서 오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 품의 아이에서 세상 속의 어른으로 자리 잡도록 이끌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머릿속으로 말이다. 나의 뇌는 상당히 일을 잘하는 편이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일상의 육아를 처리하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구분하고, 숙제에 대한 습관을 심어주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방안들을 리스트업 한다. 어제 먹은 식단과 오늘 먹은 식단이 겹치지 않으려는 노력과 최대한 가공되지 않은 단백질을 먹이고자 하는 궁리도 해본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뇌가 멍하고 정지된 내 마음의 찰나에, 그저 지고 말았다. 

첫째는 1년에 10cm씩 자란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벌써 124cm 기록을 경신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쑥쑥 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전히 앵앵대고 앙앙대고 엉엉 대는 아이로 느껴졌다. 그런데 어떤 계기도 없이 놀이터에서 달리는 아이를 바라본 그 순간 깨달아버린 거였다. 

"아... 빨리 크고 있구나.."


엄마에게 시소타자고 조르는 횟수가 줄고 친구를 부른다. 엄마에게 일일이 허락받지 않고 안전한 기준 안에서 놀이를 한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들을 기록하는 습관도 생겼다. 스스로 해낸 일이 자부심을 갖기도 하고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한다. 내가 시키거나 하지 않아도 말이다. 잡고 있는 손은 더 이상 작기만 하지 않고 걸음도 내 걸음을 숨차지 않게 따라온다. 엄마의 생각을 먼저 읽고 앞서가기도 하고 내가 틀렸을 경우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마냥 손뼉 치면서 좋다고 생각하던 내 생각을 사실 내 마음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훌쩍 큰 아이를 바라보며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뿌듯함도 아니고 아쉬움도 아니고 아련함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이상한 감정이었다. 마음을 그저 멍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감정을 한동안 느끼다가 다시 접어 넣었다. 


당분간 문득문득 계속 올라올 거라 예상된다. 나보다 육아 선배인 사람들은 이 감정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다독였을까 궁금하다. 단순히 덩치가 커지거나 키가 자라는 걸 바라볼 때의 느낌 그 이상의 무엇. 내 나름의 정의를 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나는 또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관찰할 예정이다. 

엄마라는 사람으로서 난데없이 훅훅 들어오는 이런 순간들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순간들에서 어떤 감정들을 느끼게 될지. 두근거리고 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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