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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Jul 02. 2024

048. 엄마는 발톱도 못 따라갈 동생 스킬

누나의 아픔을 날려버린 마성의 남동생



오늘 첫째가 아팠다. 열이 나고 목이 아프단다. 두 놈 중 한놈만 아프면 안 아픈 놈은 평소보다 일찍 유치원으로 향한다. 아픈 쪽의 병원 시간에 맞춰야 하기도 하고 아픔에 몸부림치는 아이 옆에서 장난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안 아픈 놈이 아픈 놈에게 장난기가 도는 건 남매공통증상인지 인간의 본능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침에 둘째가 유치원에 가면서 물었다.

"누나 많이 아파? 어디 아파?"

평소 같으면 자기도 유치원 안 간다고 졸랐을 법 한데 그 사이에 좀 컸는지 누나가 열이 나고 그래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기특하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첫째는 도무지 열이 떨어지질 않았다. 해열제를 먹고 4시간 후 칼같이 열이 올랐다. 온몸이 뜨겁고 어지러워서 짜증도 조근조근 낸다. 하지만 아픈 아이가 짜증 낸다고 엄마까지 짜증 낼 수는 없는 법. 육아 7년이면 열나서 화나있는 아이를 달래는 제스처쯤은 자연스레 나오게 된다. 


엄마의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이다. 열을 내려주기 위해 애쓰고 틈틈이 시원한 물을 챙겨주고 간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겨주는 것. 심심함에 몸을 베베꼬는 건 도무지 어쩔 도리가 없다. 머리 아픈 아이를 붙잡고 책을 읽는 것도 한 두 권이다. 누워있는 아이와 그림 그리기를 할 수도 없고 퍼즐을 할 수도 없다. 괜히 몸 움직였다가 아픔만 극대화될 뿐이다.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둘째의 하원시간. 

"누나 아직도 아파?"

둘째의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하며 내심 빌었다. 제발 둘이 맞짱 뜨는 일이 없기를. 그런데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달까.


둘째가 누나를 웃게 만든 것이다. 어디서 배운 스킬인지 온몸을 흔들어가며 재롱을 떤다. 첫째는 깔깔대며 자지러진다. 심지어 다른 쇼를 더 해보란다. 하루종일 아파서 인상 구기고 있던 첫째가 동생의 재롱 앞에 함박웃음이다. 편도염이라서 목이 아플 텐데 상관없는가 보다. 옆애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둘째가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하는 생각도.


아침에 집을 나선 순간부터 아픈 누나를 계속 생각했는가 보다. 한창 재롱떠는 동생을 보고 웃다가 결국 한계치가 왔는지 갑자기 짜증 내는 누나의 태도에도 태연하다. 평소에는 왜 짜증 내냐고 같이 툴툴거리는 게 보통인데 놀랍게도 태연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찐 남매 모먼트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올림픽 탁구 경기 하듯이 서로 공격적이다가도 갑자기 똘똘 뭉쳐서 엄마를 놀려댄다. 엄마는 못하는 방법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하루하루 커갈수록 너무 신기하다. 강아지와 병아리를 함께 키워도 이보다 신기하진 않을 듯싶다. 


첫째는 오늘밤에도 열이 나고 아플 예정이다. 평소 밤새 엄마품을 차지하는 둘째는 오늘밤 엄마품을 누나에게 뺏길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 이해하는 눈빛이다. 엄마가 자기 옆이 아닌 누나방을 들락거려도 평소처럼 울지 않고 가만히 와서 고개를 쏙 내밀겠지. 그리고 긴긴 엄마의 밤은 조금 편해질 듯싶다. 적어도 마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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