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빠의 습관이 이렇게 만들어진 거였구나
그 시절 아빠는 입에 닳도록 말했었다.
"안 쓰는 불 꺼라, 샤워할 때 물 아껴라."
본인의 철저한 행동 본보기와 함께.
물론 그 시절의 나는 또래놀이와 자아형성에 굉장히 바빴기 때문에 반복되는 아빠의 말들을 들리는 족족 저 멀리 흘려보냈다.
그 시절 엄마 역시 늘 저녁 일찍 집에 들어오셨다. 따로 약속을 잡는 일은 거의 없었고 저녁 루틴은 퇴근 후 밥상 차리기, 드라마 보기, 수면,이었다.
곧 20살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고야 말리라 결심하고 있던 내 눈에 그런 엄마의 루틴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엄마는 말하곤 했다.
"나도 너만 할 때는 새벽까지 나가 놀았어."
오늘 딸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들고 왔다. 물부족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이고 물을 아끼려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내용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구성된 그런 책.
책을 읽어주면서 요즘 뉴스에서 말하는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했다.
나야 30년쯤 더 살면 가물가물 사라져 가겠지만 내 아이들은 그때가 가장 열심히 살아가게 될 때일 텐데.
그때 매년 여름 40도를 넘어가면 어떡하지? 그때 정말 SF적으로 물전쟁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혹시 그 시절 아빠도 이런 맥락의 걱정을 한건지도 모르겠다. 전기세, 물세 걱정이 좀 더 우위였을 수도.
설거지를 위해 물을 틀었다가 수도꼭지를 잠갔다. 거품을 내어 그릇들을 먼저 닦았다. 헹굼을 위해 다시 수도꼭지를 틀었다. 좀 살살.
그 시절 아빠의 행동과 잔소리가 내게 붙어가는 요즘, 엄마의 저녁 루틴 역시 똑같이 따라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5년이 넘는 육아생활은 자연스레 나를 집에 들여놓았다. 하원 후 나의 일은 집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고 키우는 일.
일상이 되고 당연한 것이 되니 나의 저녁 루틴도 그렇게 안착되었다.
그 시절 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점점 부모님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하고 있다. 별로 놀랍지는 않다.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느껴질 뿐이다.
내 아이들도 또래놀이와 자아형성에 심취하는 시기가 오면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엄마를 답답해하겠지.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등원한 후 널려진 장난감들을 정리하며 방불을 껐다. 간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엄마가 되면, 부모가 되면 꼭 아이들과 살을 부대끼지 않는 상황에서도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 달라진다.
수년 후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그 시간까지 돌보고 걱정해야 하는 위치.
그런 거창한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방불을 끄고 물을 아끼고 뭐 그런 것들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