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자야 하는데 잠이 도저히 오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피곤하고 몸이 무거워 손 하나 까딱을 못하겠길래 냅다 누워버렸는데, 눕는 순간 잠이 깬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가고 이것저것 할 게 많은데. 몸은 도통 나를 뜻대로 도와주질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온갖 잡념과 후회와 자책과 원망 때문이다.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 머릿속을 제멋대로 부유한다. 이걸 어딘가에 배설하지 않으면 동이 틀 때까지 뇌를 찌르는 이 단어들과 싸우다 잠도 자지못하고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아 다시 노트북을 켰다. 밝게 빛나는 화면을 보니 부유하던 단어들이 흐릿해진다. 우울함이 날아갔단 이야기는 아니고, 감정을 배설하기 위해 부유하던 단어에 집중해보려 했더니 도리어 단어 하나하나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환장하겠다. 머리에 가득 떠오르는 문장을 도통 잡아채지 못하는 상태가 최근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떠오르면 쓰기만 하면 되는데 안 써진다. 왜이러는 걸까
오늘 나의 우울은 돌연 내 현재를 돌아보니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진 것에서 출발한다.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삶. 그것을 살고 있다. 그야 세상 사람들 다 자기 뜻대로는 되지 않는 삶을 어떻게든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으니 나도 한 번 견뎌보자고 마음을 먹기로 했는데. 그렇게 견뎌서 돌고 돌더라도 결국은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나를 다독여오긴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바라보던 곳과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이 너무 먼데다 방향까지 잘못된 것 같아서, 이렇게살다간 영영 바라는 곳엔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다. 나는 주변 환경이 너무 급박하게 휘몰아치면 어어어 하고 그대로 휩쓸려가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게 휩쓸리기만 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생이 끝나있을 것만 같다.
삶이 단단히 꼬여버렸다. 꼬아놓은 것은 나 자신이니 누굴 탓해서도 안 될 테지만, 자꾸만 남과 환경을 탓하게 된다. 탓하다 보면 다시 돌고 돌아 자책이 된다. 뭐 하나 성공한 것 없고, 이룬 것 없고, 쌓은 것 없이 시간만 흘려 보냈더니 이제 더는 '다시 해보겠습니다'하고 기회를 달라는 소리도 못하겠다. 이상을 쫓지 말고 이제 슬슬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그런데 애초에 쫓던 이상도 이상인지 망상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상이라면 나는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을 했던가? 게을렀던 나만 떠오르는데.
삶을 꼬아 놓은 것이 나라면, 푸는 것도 내가 되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할 줄 아는 것도, 해낸 것도 없이 30대 중반을 향한다. 그래도 요즘엔 아직 젋으니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나이긴 하다. 그래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과 타협하여 돌아가더라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보자고 선택했다. 그래서 안정을 얻을 수 있나? 잘 모르겠다. 요즘은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아마 매일 피곤한 걸 텐데,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나도, 주변도. 하다못해 금전도.
두서없이 아무런 말이나 뱉는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요즘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바빠서 하루를 견디다가 곯아떨어지고 다음날을 맞이하는 날을 반복하고 있는 요즘. 그렇게 1월이 가고 2월이 되었는데, 이러다간 3월이 되고 4월이 되고 곧 12월이 되어 아, 또 1년이 지나버렸구나... 하고 시간이 그냥 버려질 것 같다. 또 그렇게. 또 다시. 나는 또 나에 대한 아무런 확신을 갖지 못한 채로 시간만 버리고 나이만 먹겠구나. 그런 생각이 벌써 든다. 아직 2월인데.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고 싶고, 글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러나 매번 쓰는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고, 그나마도 요즘은 써지지 않으니 골치다. 머릿속엔 여전히 단어가, 문장이, 이야기가 맴돈다. 나는 평소에도 망상을 아주 많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것이 손 끝에 잡히질 않는다. 뭐라도 좀 써봐야지 하고 펜을 잡고, 키보드를 잡으면 멍해진다. 머리가 무겁다. 피곤하다. 그렇게 아무도 읽지 않는 글마저 써지지 않는다. 남들은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도 글을 써서 작가가 되던데.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세상 속에서 언제나 '아무나' 쪽에 속했다.
그래도 우울함을 배설한답시고 아무 말이나 두들겼더니 이만큼 글자가 뱉어지긴 했다.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아마 남이 읽어도, 내일의 내가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를 것 같다. 그래도 안 써진다고 하니까 뭔가 나오네. 우습기 짝이 없다. 글이 안 써질 때마다 안써진다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걸로도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이제 좀 마음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잠을 자야겠다. 이러다 누워서 또 잡념에 머리를 싸매며 괴롭다 싶으면, 다시 일어나서 죽고싶다 죽고싶다 하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라도 또 토해내겠다.
글을 뱉으면 일단 올린다는 생각으로 갈겨놓긴 했는데 이걸 올려놔도 되나? 모르겠다. 내일 생각해보고 도무지 쪽팔리면 나중에 슬쩍 지우면 되지. 맞춤법이니 띄어쓰기니 죄다 틀렸을 테지만 귀찮으니 그냥 둔다. 배설에 뭔 퇴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