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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Apr 15. 2024

Q. 다이어리는 잘 쓰고 있나요?

A. 아니오




바쁘다.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쁘다. 다이어리엔 나의 정신없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작년 12월 중순부터 불렛저널로 쓰던 노트는 2월 중순까진 제법 열심히 쓴 덕분에 200페이지 노트를 절반 가까이 채울 수 있었는데, 2월 말부터 일기 칸이 텅텅 비기 시작하더니 3월은 겨우 10장을 채웠다. 하루에 두 줄씩만 쓰자고 만들어둔 일기 칸도 겨우 여섯 칸 채워져 있다. 하루에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일이 많았는데, 3월엔 할 일을 하나하나 적어둘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 4월부턴 다이어리 정책을 바꿨다. 할 일이고 뭐고 스트레스나 풀자는 마음으로 퇴근하고 나면 다꾸를 한다. 스티커를 잔뜩 꺼내놓고 마구 붙여놓고는 아무 말이나 쓴다. 며칠 해보니 기분 전환에는 도움이 된다. 이것도 싫증 나면 또 다른 방식으로 다이어리를 채워나가야지.



어쨌거나 하루를 기록하는 것은 가능한 한 꾸준히 이어나가기로 했다. 적지 않으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허망한 기분으로 연말을 맞이할 것 같아서다. 나의 하루를 머리에 담아둘 정신도 없는 그런 하루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연말에 다이어리를 사며 올해는 끝까지 가득 채운 노트를 두 권은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졌었던 것 같다. (그 각오를 핑계로 사실 노트 한 권을 미리 더 사두었다.)불렛저널 세팅도 제법 깔끔하게 잘 되어서, 다이어리 기록 유튜브를 시작해 볼까 하는 야망을 품기도 했었다. 당장 장비 구매를 알아봤을 정도로 나름 진지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직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몰아닥쳐 다이어리 기록 자체를 제대로 못 하게 되었으므로 유튜버가 되는 일은 없었다.



곳곳이 텅 비어버린 다이어리를 보며 올 초 나는 어떤 마음으로 2024년을 맞이하려 했는지 떠올린다. 많은 계획이 있었다. 연초 계획은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라지만, 이제야 1분기가 끝났는데 계획의 대부분이 파국을 맞이할 위기에 놓인 걸 보니 울적하다.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는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막막한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든다. 3월. 매일의 기분을 칠하는 칸엔 피로감을 나타나는 초록색이 연달아 칠해져 있고, 그 이후는 텅 비어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다이어리는 나의 피로와 불안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3월 상반기 기록 요약. 텅 비었다. 한 달을 반으로 나눠 두 번에 걸쳐 짧은 일기와 습관/기분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3월 하반기는 더 심하게 비어있다. 

이렇게 보면 적지 못한 일기장도 그 나름의 기록이 되어주는 것 같다. 비어버린 칸을 보고 아쉬워하다 완전히 놓아버리지 말고 꾸역꾸역 계속 적어봐야겠다. 연말의 나에겐 기억을 더듬어갈 좋은 단서가 되어줄 거다.


어쨌든 최근의 근황은 그렇다. 바쁘다. 사실은 올해 에세이도 성실하게 쓰고 싶었고, 나가고 싶었던 공모전도 있었고, 웹 소설 신간도 내고 싶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정신없이 학원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피로감에 지쳐 멍하게 있다가 잠드는 나날의 반복. 글을 쓸 시간이 없느냐 하면 사실 그렇진 않은데, 도통 머리가 굴러가지 않아 노트북을 켰다가도 도로 덮는다.



체력의 문제인가 싶어 스쿼시를 시작했다. 스쿼시 3개월 차. 다행히 재미있어서 3개월을 또 추가 등록했고, 라켓과 코트화도 주문했다. 체력도 전보단 오른 것 같다. 그렇다고 퇴근 후에 말짱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운동으로 늘린 체력을 운동에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들고…….



웹 소설 작가는 대부분 현업과 작가를 병행하는 겸업이 많고, 작가가 아니더라도 요즘엔 부업이니 부캐니 다들 동시에 많은 걸 하고 살던데 그 체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가 너무 독기 없이 살고 있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남이 어떻게 살든 나는 나만의 페이스대로 살면 된다지만, 지금의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보니 초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뭘 해야 벗어날 수 있지? 벗어날 수 있기는 한가?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지금의 삶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불안을 담아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마구마구 붙인다. 잔뜩 사둔 스티커 중에 하나를 골라 이리저리 대보며 배치를 고민하고, 빈 칸에 빼곡하게 글씨를 쓴다. 오늘 다꾸는 영 모양새가 볼품없다 싶다가도 글씨를 채우면 대부분은 그럴싸해진다. 이것도 어찌 보면 삶의 모습과 닮지 않았는가…하고 대단한 의미부여를 해보려다 그만 둔다. 멋진 말이 안 떠오른다.

4월 불렛저널 표지. 표지 꾸밀때만 해도 이번 달은 열심히 쓸 줄 알았음.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붙여 깜찍하게 꾸민 페이지엔 한없이 우울한 내용을 적고, 감성 스티커를 이리저리 붙여 최대한으로 멋을 낸 페이지엔 요즘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을 아무렇게나 쓴다. 내 생각엔 이렇게 열심히 꾸미는 다꾸도 다음달이 되면 슬슬 질리고 귀찮아 할 거다. 그때는 또 어떤 식으로 내 하루하루를 기록해볼까? 글 대신 사진을 붙여도 괜찮을 것 같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련다.



4월. 바깥엔 꽃이 만발했고, 더워지는 날씨에 옷도 얇아지는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꽃 구경을 하니 3월 말 나를 지배하고 있던 우울감이 좀 날아가는 것 같아 마음 먹고 꽃 구경을 나왔다. 혼자 이곳저곳을 누비며 꽃을 보고, 맛있는 걸 먹으며 나를 달랜다. 꽃이 피면 꽃 구경을 하고, 10월의 날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다시 한 번 미래를 그린다.



이 정도면 꿈치고는 소박하고, 꿈처럼 낭만적인 삶이 아닌가? 물론 이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선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하나씩 격파해야 한다. 헤쳐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에 닿아있으리. 그때까진 어떻게든 나의 역경 일대기를 일기장에 차근차근 기록해야겠다. 훗날 나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어있기를 바라며.



월요일이다. 방금 무지하게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이 좋아진 참인데, 다시 좀 울적해진다. 4월의 꽃과 10월의 날씨를 즐기는 미래의 내가 되기 위해선 몇 번의 월요일을 지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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