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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May 04. 2024

두서없는 감상문

무엇을 읽었는지는 비밀이다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는다. 아주 미심쩍은 얼굴로. ‘이건 너무 납작한 시선 아닌가?’하고 코멘트를 달아둔 뒤 일단 마저 읽었다. 읽는 내내 여러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이다. 어떤 글이 상을 타는가 싶어 일부러 제법 유명한 문학상의 수상작을 골라 읽은 참이었다. 


머릿속이 비판할 점으로 가득 찬 가운데 이 글의 어떤 부분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궁금해져 페이지를 넘겨 해설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해설이 너무 어려워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럼 내가 작품을 오독한 걸까? 하지만 난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 


답답한 마음에 일단 내 생각을 두서없게나마 정리해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가까운 누군가가 이것을 읽었다면 적어두었던 내 생각을 꺼내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긴다. 하고 싶은 말은 꺼내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글은 4,500자를 넘겼다. 벌써 새벽 세 시. 새벽 감성에 혼자 오바하는 건가 싶어 글을 마무리 짓기를 그만두고 노트북을 덮었다. 


공개적인 장소에 무언가에 대한 구체적인 감상을 남기기는 참 어렵다. 그 감상이 비판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렇다고 좋아한단 말을 하기는 쉬우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내가 틀린 거면 어쩌나’하는 두려움 탓이다. 검색 조금만 돌리면 쉽게 쉽게 타인의 의견을 엿볼 수 있는 요즘, 자기 의견과 다르면 무작정 공격하거나 무시하며 까 내리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더니 나까지 덩달아 위축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 공개적인 곳에 안 올리면 그만이겠지만… 블로그나 트위터에 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입이 자꾸만 근질거리는 것이 골치다. 안 올리자니 답답하고, 올리자니 찝찝하고. 


다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글과 그 글의 찬사와도 같은 해설과 두서없이 쓴 나의 감상문을 떠올린다. 글의 해설과 나의 감상은 작품을 보는 관점부터 달랐다. 그러니 평가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도 틀린 감상이란 없을 것이다. 나도 내 감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감히 그 작품을 ‘이건 쓰레기다!’하고 주제넘게 폄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나는 나와는 다른 감상을 하는, 혹은 같은 감상을 하는 사람의 진지한 의견을 듣고 싶을 뿐이다. 서로를 비하하거나 공격할 걱정 없는 곳에서 ‘이런 의견도 있군!’하고 편하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싶을 뿐. 


하지만 어디 그런 장소와 그럴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인가. 친분이 없는 사람과 다른 의견을 나누다간 싸움으로 번지거나 ‘저 사람, 뭘 모르는군.’하고 삐딱하게 듣게 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냅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 읽어봐!’하고 감상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뭣보다 나와 같은 욕구를 가진, 그러니까 진지하게 같은 작품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그들에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들 너무 바쁘니까 말이다. 이래서 독서 토론 모임이 생기는 거구나. 새삼 그런 걸 깨닫는다. 


좋은 작품은 보고 난 뒤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간에 하나의 작품을 보고 다양한 생각이 튀어나온다는 건 사람들의 생각을 다양하게 건드렸다는 것일 테니까. 그런 점에서 내 머리를 여러모로 복잡하게 만든 이 작품은 과연 좋은 작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군. 그래서 상을 탄 거였을까?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결국 그러한 결론에 다다른다. 아마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의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 상을 탈 수 있는 걸 거라고.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언젠가 공모전에 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적어둔 나의 작은 글감 메모를 바라본다. 좋은 글이라는 거. 어렵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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