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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hyunsee Feb 21. 2020

내가 길에서 만난 진짜 인문학: 태국의 굿판 - 펫부리

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 (6)


함께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는 내가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더 바랬던 것 같아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 조각들이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기억의 조각들 말이다. 오늘의 주관적인 생각을 덧붙여 그날의 기억을 만들어 본다. 분명 그날 바다 앞에 서서 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렇게 변한 사람이 예전과 같이 돌아오기를 그리고 함께하는 내일을 다시 꿈꾸기를 바랐다. 한편 조금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건강한 나로 돌아가기를. 여행 한 달 동안 울지 않은 밤이 없었다. 그의 대한 배신감과 나의 대한 실망감으로 우울한 그림자가 깊이 드리웠다. 태생이 예술가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감정선이 섬세했다. 언제나 축복 같지만 저주 같은 능력이었다. 미묘한 것들을 더 많이 느끼는 감각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감각적인 일들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것들에 더 많이 신경 쓰며 살아야 한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작된 기억에 나를 위한 마음을 하나 밀어 넣어본다. 과거의 나에게 전해 본다.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오지은



음악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 꿈의 첫발을 내디뎌본 것 같아


중학생 때 외과의사였던가 아무튼 의사 선생님 쓴 세계 음악축제 기행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다짐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모든 음악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말이다. 그래서 배낭여행의 결심이 어렵지 않았다. 음악의 취향은 달랐지만 우리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해변에서 나와 논두렁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탔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니 멀리서 굿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딱 굿판에서 들리던 소리였다. 무서움반 호기심반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정자 같은 곳에서 가게 오픈식을 축하하는 굿판이 열리고 있었다. 사실 가게 오픈식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우리가 궁금했는지 동네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걸었다. 태국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굿을 하는 이유와 어떤 식인지 많은 설명을 해주셨다. 한참을 그렇게 굿판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너무너무 신기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무당이 존재하고 음식과 음악으로 신에게 기원한다는 것이 말이다.


문화도, 언어도, 지형도 너무 다르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간다움은 각자의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여자 무의와 남자 무의는 서로 대화를 주오 받으며 연극을 하고 있었다. 대화는 알 아들을 수 없지만 극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만으로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의 대한 기원은 불안을 안정으로, 안정을 번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굿이 다 끝날 때까지 홀린 듯 지켜보다가 예를 갖추고 굿판에 올라가 이것저것 물었다. 한국음악이 전공인 나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와 그 멋진 오페라 하우스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귀한 경험을 했다. 내가 보고 듣고 헤매며 만난 진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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