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 동남아 배낭여행의 기록 (7)
여행을 한다는 것,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신세를 지는 일
Ban Bang Home은 오눌이라는 주인장 언니와 그녀의 언니 그러니까 자매가 운영하는 리조트였다. 고급 빌라가 모여있는 리조트는 아니지만 오두막에서부터 몇 동의 펜션까지 주인장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든 곳이었다. 오눌이 업그레이드 해준 펜션에는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있었다. 이 날의 외출의 목적은 (1) 바다 보기 (2) 바비큐를 위한 싱싱한 재료들을 구입하기였다.
오눌의 말로는 바닷가에서 2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쭈욱 직진해서 나가면 시장을 만날 수 있다고 했었다. 바닷가에서 신나게 달려 굿판까지 가는 길에 길을 잃었는지 한 시간 남짓 달렸는데도 마켓은 보이지 않았다. 큰 도로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타고 헤매는 우리를 본 아저씨는 선뜻 우리가 길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전거를 싣고 우리는 그렇게 또 도움을 얻었다. 시장을 찾지는 못했지만 숙소에서 많이 멀지 않은 곳의 식당에서 해산물과 야채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잃고 도움을 받아 해가 질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아침 말고는 하루 종일 먹은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신선한 재료로 바비큐를 먹을 생각에 우리는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불을 지피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여름방학이면 캠핑을 갔었기에 바비큐의 대한 경험은 있었다. 숯에 불을 지피면 불이 금방 붙는 것인 줄 만 알았다.
숯이 물을 많이 머금었는지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사온 재료로 준비를 했지만 불이 없어 저녁을 먹을 수 있는지 미지수였다. 포기할까 하다가 재료를 사 오는 여정 동안의 많은 일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오기가 났다. 가지고 있는 쟁반을 더 가열하게 흔들어 바람을 만들었다. 불씨는 살듯 살듯 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참을 부채질하자 불씨가 살았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바비큐를 이날 맛보았다. 노력의 결과로 얻은 값진 식사였다.
자-알 사는 것,
건강한 마음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아침의 중요성을 더 간절하게 느끼게 된다. BnB 숙소라고 해서 이렇게 단백질과 야채까지 영양 밸런스를 잘 맞추어 내어 주는 곳은 드물다. 간밤에 먹은 바비큐와 든든한 아침까지 펫부리의 작은 바다마을의 기억은 그래서 더욱 뚜렷하고 단단하다. 잘 먹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최근 상실감으로 식사를 제때 잘 챙겨 먹지 않은 날들이 오래되었다. 종종 식사 여부를 챙겨주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힘들수록 음식을 귀하게 잘 챙겨 먹어야 해. 스스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앞으로도 귀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음식의 대한 욕구가 크지 않은 나는 간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끼니를 때우는 일들이 많았다.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가장 즐겨 찾았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밥 먹는 일이 즐겁지 않은 행위가 되고는 했다. 우울증 치료에서도 식습관을 고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여행의 동안에도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은 잘 챙겨 먹고, 좋은 곳에서 잘 씻고, 잘 자는 삶의 기본의 기본 욕구가 자-알 갖추어졌을 때였다.
이른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근처 사원에 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관광지는 그래서 더 느리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우리가 잠시 이별을 하기로 한 날인데, 이날의 기억으로 우리는 참 헤어지기 싫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이 나를 예뻐해 주고 사랑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야 했다.
레일을 타고 올라온 산의 정상에 올라서자 애틋함은 더 커졌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했다. 그렇게 붙잡으려고 아등바등할 때는 잡히지 않았던 관계가, 헤어지기로 마음먹자 더 간절해졌다. 방콕에 도착해서부터 펫부리까지 오는 동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불신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함께 어려운 일들을 함께 이겨내다 보니 정이라는 것이 생겼다. 어쩌면 부부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전통무용을 연습하는 초등학생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자랑하듯 보여주는 태국의 전통무용과 알 수 없이 떠들지만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아리랑을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에게 태국의 전통 민요를 가르쳐 주었다. 학교의 작은 정자 같은 곳에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한참을 놀았다. 아직도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
여행의 작은 순간과 기억들은 그렇게 켜켜이 쌓여 오늘을 지탱하게 해 준다.
1월에 들어서면서 태국 남부지방의 날씨는 더 따뜻해졌다. 가는 곳마다 꽃이 피었다. 뾰족뾰족 가시가 나있는 선인장에도 예쁜 꽃이 피었다. 나에게는 생경하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선인장에도 꽃이 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본 선인장의 꽃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예민하고 뾰족뾰족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 사진을 찍으며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뾰족한 가시를 품고 살지만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