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집들이에서
이별에 어른스럽게 대처할 수 있다면
한 달 전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한 꾹 오빠를 만났다. 아버지 장례 후 장례식을 찾아준 사람들에 대한 인사 겸, 사정상 살 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이사 예정이었던 집의 집들이 겸 몇몇 지인들을 초대한 자리였다. 꽤나 진지한 자리에 제격인 갈매기살과 돼지껍데기를 먹으며 우리는 평소처럼 이야기했다. 꾹 오빠는 이사를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독립의 삶을 포기하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도 챙겨준 사람들이 고마워 텅 빈 집에서라도 집들이를 할 계획이었고 식사까지는 어려워 오빠가 살았던 시간만큼 그 동네에서 오래된 맛집이라는 가게에서 고기를 먹었다. 나는 잘 모르는 오토바이와 게임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갈매기살과 껍데기가 정말 맛있다고 찬양하며 다음에 또 같이 오자고 이야기했다. 시작한 기억만 나고 무슨 얘기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오토바이와 게임 이야기가 극적으로 끝이 나고 딱 알맞은 상황이라고 여기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꾹 오빠가 살 뻔했던 전셋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집을 구경했다. 살림이 하나도 없어 모델하우스 같았다. 노래를 부르면 에코를 잔뜩 넣은 것마냥 울려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살림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다. 뜬금없게도 손님상차림을 위한 큰상이 두 개나 있었고 에어프라이어도 두 개나 있었다. 우리는 상 하나를 펴고 한 개의 에어프라이기에 치즈볼을 돌렸다. 이게 마지막 집들이가 되길 원한다며 꾹 오빠는 냉장고에 있는 포도를 꺼내 다 해치워 줄 것을 요청했고 우리는 능숙하게 포도를 씻어 준비했다. 그리고 상 위에는 장례식에 쓰고 남았다던 젓가락과 종이컵이 대기업 로고를 심플하게 담고 준비 중이었다.
쓸데라고는 한 개도 없어 귀가 간질간질할 때마다 들은 얘기 몽땅 후벼 파버리고 싶은 헛소리도 하고 군 시절 바이블처럼 끌어안고 그녀의 몸에 나의 젊음을 기대어있었다던 전설의 잡지 '맥심'도 읽었다. 오빠는 살림이 없는 집에 혼자 우두커니 있다 불현듯 옛 생각이 나 샀다고 구입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 말이 설득력은 없었는데 이해가 영 안 되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소리칠 일까지는 아니라 나도 그 잡지를 추억에 젖어 같이 읽었다. 역시나 갈수록 헐벗은 여자들의 몸은 많아지는데 젊음의 속마음까지 헐벗지 못하는 내용의 글들이 가득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마지막 장의 그녀의 몸매를 감상하고 나서야 비로소 텅 빈 집에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꾹이 오빠는 입관식에서 본 아버지의 낯섦에 대해 이야기했다. 워낙에 말 수가 없는 오빠였기에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했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런 오빠는 자신이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우리에게 덤덤한 모습으로 그렁그렁 떨구고 있었다. 조금 더 사실 줄 알았던 아버지는 입원 한 달 만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져 모르핀을 맞아 가족들도 알아보기 힘든 상태가 되셨고 코로나 확산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일도 어려웠었다고 말하면서 꾹 오빠는 자신이 기억하는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는 듯했다. 계속해서 입관식에 수의를 차려입고 마지막 단장을 하신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낯설어 아버지가 아닌 줄 알았다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오빠의 얼굴을 한참 보기가 어려웠다. 돌아가셨다는 현실도 믿기 어려운데 낯선 얼굴까지 한 아버지를 본 오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보니까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첫째 울기 싫었고 둘째 질질 짜기 싫었고 셋째 푼수 같았다. 그리고 중요한 넷째 나는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해보아도 오빠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는 것. 그저 예상하는 아픔,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없는 이별의 상실감에서 오는 심적 고통을 나는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별이라고는 나 싫다 떠나간 남자에게만 적용하고 있으며 맨날 사랑인지 미련 인지도 구분 못하는 30대 후반의 어린애가 아니었던가. 나는 꾹 오빠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오빠가 맞은 처연한 이별에 대한 오빠의 절제된 슬픔에 존경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 이런 이별의 순간에 이 날을 떠올리고 너무 주저앉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도 했다. 오늘도 나는 배웠다며 오빠에 대한 나의 존경의 뜻을 전하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취기 어린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자리를 함께 치웠다. 그리고 우리는 오기 전보다 더 텅 비어버린 집의 불을 함께 끄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