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을 오르면서

싫은 것보다 좋은 게 많을 나이

by 양미숙

아이들과 오랜만에 산에 갔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산이라 가끔 아이들과 갔었는데 코로나가 번지면서부터는 제 어디서 걸릴지 몰라 산에 가는 것조차 겁이 나서 못 가고 있었다. 산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그저 밖에서 실컷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거기에 더해 선생님이 부풀려놓은 가을 산에 대한 환상에 흠뻑 젖어 기대감까지 충만했다. 아이들은 가을 산에서 볼 수 있는 열매들을 모두 수집해올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차마 임산물 채취는 불법이라고 말할 수 없어 산에 사는 다람쥐와 새들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교과서적인 말로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역시나 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들은 "그래! 다람쥐 볼 주머니에 도토리와 밤을 양보하자"라고 약속고 산에서 난 열매는 가져오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작 열 번이나 외쳤을까 그새 우리는 산에 가까워졌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숲 속 산책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얘들아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혀 나는 소리를 들어보렴"이라고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걸음을 멈춘 한 아이가 더 작은 소리로 "아프겠다"라고 말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묻자 "부딪혀서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문학적인 이유는 전적으로 담임의 영향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혀 아파하는 소리를 한참 들었다. 결국 멍들어 갈색으로 변한 제 몸을 버티다 못해 앙상한 가지에서 떨어지고야 마는 잎새의 마지막에 내 마음이 다 시리고 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산책로를 뛰 다니며 바람에 부딪히기를 즐기고 있었다. 세상의 슬픔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뛰던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도토리 각두를 발견하고 도토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뒤에서 어떤 아이가 밤 열매를 찾았다며 나에게 가지고 왔다. 산책로 어디에도 밤나무는 없는데 어디서 밤이 나온 걸까 어리둥절해하는데 아이들은 그저 밤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너도 나도 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없을 텐데.. 어느 등산객이 떨어트린 것일까? 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밤을 찾았다며 가지고 왔다. 이건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밤나무 없는 곳에서 누가 밤을 이렇게 떨어트리고 갔을까 의아해하고 있는 데 뒤에서 보조선생님이 주머니에서 밤을 꺼내 슬쩍 보여주시더니 씨익 웃어 보이셨다. 나는 그녀가 2020년 연말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나도 그녀의 수상을 위한 이 작품의 조연이 되겠노라 놀라는 연기와 함께 가을 열매를 찾은 아이들의 남다른 관찰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사실은 마트에서 샀지만 줍기는 산에서 주은 알밤을 각자 주머니에 한 개씩 넣고 내려오는 길. 다시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났고 한번 더 아파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들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지렁이를 발견하기도 했고 사방에 흩날린 낙엽을 밟기도 했다. 우리는 가을이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싫은 건 찾기도 말하기도 싫어! 가을이 정말 좋아! 나도 그래!

이전 05화텅 빈 집들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