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전날 배추를 절구고 쑤셔오는 뼈 마디마디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뒤척이기만 반복하던 엄마는 배추 절구 기를 도우는 시늉만 하다 맥주 먹고 뻗어버린 딸이 자고 있는 곁에 와 담요를 덮고 누웠다. 나는 엄마의 인기척에 깨 다시 잠들지 못했고 엄마는 잠시라도 눈을 부치겠다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과연 절임배추를 사지 않고 배추를 직접 절여 만드는 김장이 합리적인가. 노동력이 너무 소모되는 일이다. 내년부터는 억지로라도 절임배추로 김장을 하게 하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다짐만 하다 보낸 새벽시간이 다 가고 시간은 어느덧 6시 20분. 엄마는 늦었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고 나는 더 자는 척하면서 5분 뒤 따라 나가 커피를 끓여 엄마 한 잔 타 주고 나도 한잔 마시며 아쉬운 잠을 떨쳐냈다. 그리고 숨을 모두 끊어놓기 위해 소금으로 질식시켜 아주 절여놓은 배추 40포기의 축 늘어진 몸을 3차로 나누어 씻기 시작했다. 사이사이 헹구기를 반복하고 물기를 쫙 빼기 위해 배추를 쌓아두면서 나는 절임배추를 사야겠다는 생각보다 노동에 익숙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괜히 미안했다. 이 많은 세월 가족들을 위해 매년 겨울 초입에 이런 노동을 해왔다고 생각하니 이 노동이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을 까 생각했다. 그 생각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배추를 헹구다 허리를 잠시 편다고 일어서며 문득 본 거울 속 장대한 나의 모습이 비쳤다. 나를 커다랗게 만든 것의 절반... 아니 절반 이상을 담당한 나트륨은 이 김장김치에서 나왔으며 그 김장김치는 매년 엄마 혼자 만들었고 그것의 결과물은 지금의 나와 조카를 낳고 가정을 꾸린 동생, 아직도 일하느라 고생하는 아빠였다. 엄마의 고생이 헛되지 말라고 나는 배추가 참 잘 절궈졌다는 칭찬을 했다. 엄마는 올해는 딸이 도와줘서 금방 끝날 거 같다고 했다. 나는 내년부터는 김치를 주문해먹자고 제안했다. 엄마는 움직일 수 있는 한 당신이 담아 먹이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엄마를 좀 위하라고 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담은 김치를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뿌듯이 보는 그 기쁨을 빼앗을까 싶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배추 씻기를 마무리하고 빨간 양념에 배추 속을 채워 바르고 김치통 하나를 채우고 말했다. 이제 김치 한 조각을 먹더라도 아까워할 게. 엄마는 대답했다. 그냥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야. 그만한 게 당신에겐 더할 것이 없는 것이 김장이었다니. 그걸 너무 늦게 안 것 같아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