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잘한 것.

by 양미숙

3주 만에 병원을 찾았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취침을 위해 먹었던 약 없이도 잘 수 있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잠이 드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만족할만한 수면은 아니라고 서운한 듯 털어놨다. 2-3시간에 한 번씩 눈을 떴고 그마저도 내내 일하는 꿈, 싸우는 꿈,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고 안 좋았던 추억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꿈 등등 꾸기 싫은 꿈만 골라서 꾸며 일부러 꿈을 멈추려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강제로 뜨는 일도 있었다고 일러바쳤다. 역시 경청으로 권위 있으신 명의답게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듣던 의사는 잠이 드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 물었다. 누우려고 자면 이제는 1시간 안에 잘 수 있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의사는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면서 잘됐다고 했다. 꿈에 대해서는 워낙 잠을 얕게 자기 때문에 꿈을 다 기억하게 되고 결국 꿈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다고 했다. 그래도 꿈 자체가 낮에 받은 스트레스를 뇌에서 처리하는 과정이라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멋있게 말했다. 그래도 수면의 질을 위해 약을 추가 처방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일상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 질문이 아니라 훤히 들여다보듯 아직도 여전히 답이 없는 상황인 거죠?라고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점점 더 참기가 힘들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자기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얼마나 힘이 들까 하고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참지 못해도 그리고 참아도 나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니 그래도 새 학기에 좋은 일이 있지 않겠느냐 올해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온갖 희망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없어지지 않을 것들 중 최악의 한 가지를 뽑아 대답하고 그것은 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내 옆에 머무르며 나를 괴롭힐 거라고 말했다. 의사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엄살이 섞인 목소리로 이명증세가 생겼다고 말했다. 오른쪽 귀에서 자꾸 이명이 들린다고 했다. 의사는 이명에 대한 증상을 듣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듯 또 최선을 다해 듣더니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을 추가해보자고 말하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완화하는 약의 양을 늘려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직 진료도 끝나지 않았는데 성질 급하게 일어나는 나를 다시 앉게 하고 버티는 게 대단한 거라고 말했다. 일 년이 가까운 시간을 버텼고 그리고 버티고자 하는 의지로 병원을 찾은 일은 분명 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말 잘 보내라고 인사해주었다. 하지만 멋없게도 나는 그냥 가면 되나요?라고 답했고 의사는 친절한 미소를 띠며 네네라고 말하며 키보드를 다다다다 두드리는 것으로 민망함을 달래는 것 같았다.

왠지 올 때보다 머릿속이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으로 상담실을 나오는데 대기실에 쪼르르 앉아 마스크를 한채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소파 구석 자리에 앉으며 이 병원에서는 의사만 웃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만약 웃지 않는 이 우울한 사람들만 있는 세상이었다면 의사를 미친놈으로 몰아도 무리가 없을 거라는 잡생각을 뜬금없이 했다. 의지에 상관없이 쓸데없는 생각을 늘어놓다 약을 받고 치료비까지 지불하고 병원문을 나서면서 버티고 있는 거라는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 입꼬리를 작게 움직였다. 웃음 비슷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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