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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숙 Nov 10. 2021

후련하다

외발로 설 수 없어 서운함과 함께한다. 

후련하다.

1. 좋지 아니하던 속이 풀리거나 내려서 시원하다.

2. 답답하거나 갑갑하여 언짢던 것이 풀려 마음이 시원하다. 


퇴사했다.

누군가는 퇴사 앞에 '드디어'를 붙였고 누군가는 퇴사 앞에 '결국'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무엇을 붙이든 상관없었다. 그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퇴사'는 '퇴사'


제일 먼저 나에게 찾아온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그동안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를 던져 버리고 자유가 된다는 느낌이 너무 후련했다.

급하게 먹은 음식의 체기가 내려간 것, 출퇴근 시간의 차 막힘이 뚫린 것, 앓던 이를 뺀 것, 묵은똥을 싼 것 등등의 후련함은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후련했다. 

후련함 그 자체.


그래, 그동안 나를 괴롭힌 상사. 그녀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용서한다.

왜? 난 후련해졌으니까.

스트레스로 인해 고통받은 내 몸과 마음. 기다려라 참은 너에게 보상의 시간을 주마.

왜? 난 후련해졌으니까.

그동안 다 읽지 못해 쌓아 둔 책, 팽개친 글쓰기. 모두 다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왜? 난 후련해졌으니까. 


그런데 후련함이라는 것은 외발로 오래 버티지 못하는 감정인지 곧 서운함을 불러들였다. 


나의 직장생활이 이렇게 끝나는 것에 대한 서운함.

그동안 나를 거쳐간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남아있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

6년을 버티고 같이 의지했던 남은 동료들에 대한 마음.

아쉽고 섭섭한 마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운함이 들어도 마무리는 해야 했고 마지막은 마지막이었다.

후련함과 서운함은 왼발과 오른발이 되어 퇴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후련함이 한 발 디디면 웃었고

서운함이 한 발 디디면 울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감정으로 퇴사까지 이르렀다.


세상 모든 마지막은 후련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찾아들어야 끝낼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후련함만 느끼고 헤어질 수 없고 서운함만 느끼고 끝낼 수 없다. 

둘의 감정이 함께하지 않는 한 마지막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둘과 함께 마지막까지 걸었다. 

그리고 잘 헤어졌다. 잘 끝냈다. 잘 마무리했다. 매듭을 잘 지었다.  

퇴사!


이제 할 일들 다 했으니 가보렴, 나는 이제 여기서 좀 쉬련다. 




3. 서운함 없이 마지막까지 갈 수 없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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