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미숙 Jun 17. 2022

부끄럽다

이제야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부끄러움

부끄럽다

1.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2.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


부모님 댁에서 주말을 보낸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 내 앞에 엄마가 물건들을 쏟아 놓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세워두더니 무심히 바라보는 내 눈앞에 들이밀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에 쓰는 겨?"


뭔가 싶어 물건들을 자세히 보니 바디샴푸, 로션, 트리트먼트 등등이었다.

불친절하게도 죄다 영어로 쓰여있는 물품들.

한글로 된 설명은 개미도 '이건 나도 밟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있었다.


"샤워하고 발라"

"이건?"

"이건 거품내서 샤워해"

"이건?"

"샴푸 하고 해"


엄마는 잊기라도 할까 반복해서 혼잣말로 어떤 용도인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목욕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아니~ 앞집 아줌마가 많다고 줬는데 어디에 쓰는지 알아야지 호호호"

"줄 때 물어보지"

"아니.. 뭐..."

"모르면 물어봐 엄마."

"누구한테 물어봐. 딸이니까 편하니까. 딸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렇게 물어보는 거지"

"그냥 모를 때는 물어봐. 뭐가 어려워?"

"엄마는 못 배워서 모르는데 가끔 사람들이 내가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려...."


나는 갑스러운 엄마의 고백에 걸려 넘어져 쓸린 것처럼 심장이 쓰라렸다.

엄마가 이런 일에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가 무시해?"

괜히 울컥하는 감정을 누르면서 애써 쿨한척하며 말했더니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엄마, 누가 무시하냐고. 누구냐고. 누구야?"

"아니.. 그냥 누가 아니라.. 그냥 내가 생각하는겨. 내 느낌이 그랴"


할 말이 없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무시하는 것을 느낀 다는 것은 상대는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시를 당하는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마음이 상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콕 집어 무시하는 것이라고 단정해서 화내거나 따질 수 없는 걸 나도 안다.


"엄마.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무시하는 사람들이 나쁜 거지. 그리고 누가 엄마를 무시한다고 그래. 신경 쓰지 마!"

"아니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단 말이여~ 호호호"


엄마는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나를 의식하며 웃으며 넘어가려 했다.


"아니야. 무시 안 해. 걱정하지 마"


나는 애써 웃어넘기려는 엄마의 모습에 속이 상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엄마에게 화라도 난 것처럼 말해버렸다.  

일부러 엄마를 보지 않으려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중학교를 중퇴했다. 정확히는 초등학교 졸업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 자식을 가르치는데 관심 있는 부모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마찬가지였다. 가난은 엄마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엄마는 전쟁 직후 충청북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고 중학교를 몇 달 다니다 큰 이모네 애들을 봐줘야 했고 남의 집 일을 다니는 외할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그러다 서울 이모네로 올라와 눈칫밥 먹으며 얹혀살면서 구로공단에 미싱일을 하러 다녔다.


그런 엄마의 인생을 내가 몰랐을까?

당연히 알았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 나는 나의 인생'

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자람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면서

한 번도 엄마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실은 엄마와 나의 인생은 다르다고 분절시키고

엄마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그런 내가 제일 엄마를 무시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속이 상해 펑펑 울고 싶었다.

나의 철없음에 그리고 무심함에 부끄러워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운다한들 엄마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리라. 


이제 내가 엄마에게 기회를 주면 어떨까.

유난히도 겁이 많은 어린 나를 달래주던 힘 있던 그때의 그 젊었던 엄마처럼

당신이 무시당할까 봐 겁을 먹고 있는 늙은 엄마를 달래주면 어떨까. 


그러려면 엄마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는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용기 내 말했다.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있어 엄마. 늦지 않았어"

"아이고!!! 다 늙어 배워 뭐해"

"아니야. 배움에 나이가 어딨어. 배우고 싶을 때 배워"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아직은 돈을 벌어야지...."

"배우고 싶을 때 말해"

"그려. 배우고 싶을 때"


그리고 엄마는 사과를 깎기 시작했고 나는 엄마의 취향에 맞춰 커피를 탔다.


"우리 딸이 타주는 커피가 세상에서 최고 맛있네"


나는 커피 타는 게 뭐가 어렵냐면서 무뚝뚝하게 말했고 엄마는 뭐가 좋은 지 계속 웃기만 했다.



3. 다시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감정.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