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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plan Jul 30. 2024

#005_기록가

장례를 오롯이 기록하다

어쩌면 장례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조부께서 소천한 지 벌써 9주기다.

그동안 조모와 부모의 주름도 늘어가고, 각자의 늘그막에 도달하고 있다.

문득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되짚어보자니 아래의 일들이 떠오르더랬다.

나는 외탁을 하여 유독 조부모와 각별했다. (요즘은 외조부 친조부를 가리지 않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입관부터 매장의 과정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실감의 단계조차 아닌 부정의 단계에 가까웠던 것일까?

결국 포크레인으로 덮을 건데 당시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래서 장례의 과정을 모두 카메라에 기록했다.

차가울 만큼 관찰의 시선으로만.

그 과정에서 발견한 한국식 장례와 기독교가 혼재된 모습도 흥미로웠고, 가족들의 감정을 덤덤하게 담았다.

타오르는 뼈와 흙냄새를 뒤로하고 집에 와서 촬영해 둔 사진들을 보았다.

짐승처럼 울었다.

애꿎은 카메라만 부여잡았다.

이쑤시개로 나를 찌르던 장난기와 유독 하얀 피부를 물려준 당신과 더는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무섭고 사무치게 서러웠다.​

슬픔의 파도가 지나가고 여러 감정의 조개껍질들이 남았다

그때부터 도현이는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연출보다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학과부터 진로까지 바꾸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를 이룬다.

물론 지금도 기획하고 연출한 뒤, 오려낸다.

거기서 차별점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담아내는 그 과정이 중요함을 넘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다.

어쩌다 회사에서 당신의 ‘지금’을 담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작성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생각이 났다.

나는 당신과 우리의 지금에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제작자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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