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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May 18. 2024

선생님이 지적했으니 나도 무례하게 할 건데요?

이 얘길 듣고 공황증에 걸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5월 14일 2교시에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 짝이 과학시간에 틀린 대답을 했다고

본인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왔더 퍽*(뜻은 모두 알 테니 생략)이라고 말한 학생 때문에

잘못 대답한 아이가 울기직전이길래

"바로 사과해라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다" 하니까

"선생님하고 상관없잖아요." 하던  학생.

3월부터 비슷한 사례로 1일 1 뚜껑을 열리게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닌데요

-선생님이 봤어요?

-쟤가 먼저 했는데 선생님이 잘못 본 거잖아요

-저는 커닝 안 했는데요

-그냥 찍어서 90점 맞은 건데요_지난달 단평 35점

-몰랐는데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돼요?

-아하 그런 게 있었구나 몰랐네(반말)

-저는 그 내용에 관심 없는데요

-교장선생님한테 말하세요

-우리 엄마한테 한번 말해보세요

-급식 때 **땜ㅇ기분 나빠 밥 안 먹어하고 바로 밥 버리기 

-1인 1역 당연히 안 함. 등등


아이들과 만든 학급법과 화폐제도 공개상담제도가 있지만

저 학생은 법 안지키겠다. 까먹었다 화폐안받고 만다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규칙 지켜. 예의 지켜. 걸어 다녀.

당연히 피식 웃으면서 지나가는 꼴을

약 60일째 보았다.

정서적 소모가 어마어마한 건 둘째치고 


학교는 변하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복무에 딴지 거는 게 줄어든 것 말고는

행정업무도, 학급당 학생수도

아니 그것도 다 차치하고 저런 학생을 어찌할 수 있는 규정이

사실은 허수아비다.

이런 말을 듣는다고 교사가 훈육할 수 있는 장치가 있을 것 같은가?

인권조례 폐지 이딴 걸로 호도되지 마시라

진짜 문제는 따로있다.


절대 국회에서 개정안 하는 "정서적 아동학대"

애들도 저 법안으로 고소할 수 있는 걸 안다

친부모는 학대로 애가 죽어서 언론에 나야 처벌받는데

교사는 신고당하면 높은확률로 처벌과 무관하게 직장을 잃는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못버티는거다.


교육청에서 사후 지급되는 지원금..

첨엔 내 돈으로 변호사 선임해야겠지..

난 그 돈도 대출받아야 하는 완전 박봉인생이라

그러고 싶지가 않다.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이유로 그냥 참고 넘어가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게 교권침해 인가로 걸고넘어질 힘도 없다

이미 교권침해를 당할 대로 당하고 나면

신고시점에 나는 거의 죽기 직전이나 다름없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라서 그렇다.

내가 학급운영을 잘했나 안 했나 가 문제가 아니다

17년 교직에 있으면서 15년 담임을 했는데

그만둘지 고민한 해는 단 3년. 12년은 행복했다.

그런데 그 3년이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우리은행 대출금을 갚아야 되니까 버텼고

그 대가로 나는 정수리 머리털과 멀쩡했던 치아 1개가 갑자기 염증을 일으키더니 빠져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 학년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사정상 다들 뽑기 때문이다.

뽑기 운이 안 좋은 걸로 내가 정신과에서 약을 늘리고

집에선 할 일을 못하는 상황. 이건 산재 아닌가?

내 마음이 유리멘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난 원래 유리멘털이 아니고 이딴 일 외에 다른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다.

이쯤 되면 그냥 적성에 안 맞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하다.

왜냐. 이런 어정쩡한 상황의 교사는 무지 많은데

법 뒤에 숨어 세상 모두가 교사를 홀로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사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무튼 그 학생을 흐린 눈 처리할까 하다 그래도 주의는 줘야 되니까

쉬는 시간에 복도로 데리고 나가서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너한테 바른 언어사용을 가르쳐야 한다 

언어 바르게 쓰고 예의 지켜라.

그렇게 못할 거면 교장실과 부모님께 알리겠다." 하니

명언을 내게 날렸다.


"상관없어요. 우리 엄마 다 알아요. 선생님도 나한테 무례하게 말했으니까 나도 무례하게 해도 되잖아요. 나는 영어로 욕한 애한텐 사과할 수 있는데 선생님한텐 사과하기 싫은데요?"


그날 오후 나는 걔에게 그 어떤 조치도 하지 못했다.

집에 애들을 보내고 정말 이메일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고민했다. 알릴까 말까. 지난번 얘가 다른 애 다리를 걸어서 뇌진탕 걸릴뻔한 거 알렸을 때 반응이 생각나 절망하고

그냥 담주부터 국영수 보충수업하는데 얘가 논다고 그냥 집에 가니 가능한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메일을 썼다. 써놓고 나는 공황증을 앓고 있는 거다.


대체 이게 무슨 직장이지?

싶었다

교권침해라기엔 애매하다. 도움을 받을만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없어져도 정서적 아동학대는 굳건하다. 이게 내가 좌절해 버린 이유다.


3월부터 벌써 힘들어져서 안 한 게 없고 더 챙겨줬는데

두 달간 쓴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보상받다니.

완전히 뚜껑이 열리고 김이 새 버렸다. 그래서 무기력해졌다.

그 순간 정말 우리 학교에도 수업방해학생 분리시키는

오피스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지만

현실은 여전히 각개전투다.


아무튼 난 스승의 날 다음날, 급히 울렁거림이 심해서

퇴근길에 병원에 갔다. 할 일이고 뭐고 내가 좀 살아야 해서.

뱃속에 시멘트가 차는 느낌을 받는 응급상황이었다.

학생 때문일 수 있다는 의사샘말에

"에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고소 안 당했음 됐죠 머" 했더니

"선생님. 정신 차려요. 너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 교사 의무 아닙니까? 지금 이런 일로 오시는 선생님들 너무 많아요 가르치는데 기분 나빠하는 애가 문제인 거예요." 하시던 의사 선생님의 헛웃음.


그리고 나는 안타깝게도 4일 내내 의사 선생님의 예언대로

몇 달 만에 울렁증과 극한피로를 동반하는

공황증이 발발하고 말았으며

책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의사 선생님이 공황증시 먹으라고 준 약을 쏟아붓고 있다.


이걸 남편에게 말해놓고서야 쓸 에너지가 생겨

이렇게 글을 썼다.

누가 보면 학교 일 참 사소하다. 그런 말 흘려들으면 된다.

그러나 참 심각하지 않은가?

저런 말을 교실에서 할 수 있고 교사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게?


난 조금 전부터 심각해졌다.

하루 소중하게 살기도 모자란 시간에 

이런 일로 계속 치료를 병행해야만 하고

내가 쉬이 낫지 않는 게 내가 교사로서

누군가는 내가 모자란 거라고 한다면

혹은 그 악다구니를 버텨낸 교사는?

이게 과연 보람이 있을까.

선량한 학생들에게 가는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서이초 막내선생님 이후 서울에서 외치든 말든

오늘의 나는

이런 애를 지적했다고 내가 두려움에 떠는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자기 검열이 숨이 막힌다.

2년 파견근무동안 교육청에서 꽤 고생하고 돌아와서

잔뼈가 굵어졌다 생각했는데

학교는 아니다.

교육청과 아무 관련 없는 기관이며

하나의 고립된 섬이다.

작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학교에 오피스가 시급하다.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전환이 필요한 때다.

딸아이 다니는 피아노학원에서 아이들 연주회를 야외로 진행하면서 남편이 학부모축하오프닝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 들으면서 힐링을 좀 했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살길을 모색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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