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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ul 10. 2024

17년차도 학교가 두렵다

죽을까봐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학교가 정말 싫었다.

집안 형편상 교대 진학을 했고 보장된 직장이라는

부러움 섞인 얘길 들으며 적당히 공부했다.

다시 학교라는 곳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신규때는 새벽에 술취한 애아빠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이가 먹을수록 내가 노련해짐과 동시에

보호자와 악의적인 학생들도 노련해져서

따돌림 가해학생이 내가 본인편을 안들었다나.

그걸 앙심을 품고 내가 그 학생을 매일같이 때렸다고 한달동안 일기를 쓰는 일도 있었다.

그 일기를 든 애 아빠가 망치를 들고 학교에 왔고

관리자는 나더러 사과하라고 했다. 나는 원인도 모른채 누구 아빠인지도 모르고 사과했다

학부모가 근거없이 쫓아와도 사과하는게 트렌드였던

그게 학생행복과 연결되는 괴랄한 시대가 몇년전까지 있었다.


나는 강하지 못했고 하란대로 했다. 그게 맞는줄 알았다.

그랬더니 계속 여기저기서 얻어맞았다.

그렇게 기피업무를 희망한다고 써내도

누군가의 눈에는 영 못미더웠는지

기피업무는 받았지만 부장한번을 못했다.

수업은 즐겁고 의미있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학교라는 곳에서는 증명해야 될게 참 많은데

를 수업으로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쉴틈없이 수업과 업무와 생기부의 늪에 빠졌다. 거의 죽을지경이면 방학이 돌아왔는데 몇년전까지도 계속 학력캠프에 투입되어 시급 만오천원에 내 41조연수시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연구하고 준비할 새도 없이 새학기가 찾아오고 젊으니까, 이런거 해봐야 승진한다는 이유로 작은학교로 보직과 수당은 다른 계에서 가져가고 홀로 학폭 업무를 4년정도 했다.


언젠가 이야기할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ㅇㄷ스쿨에 옛날에 올렸던 프로젝트 자료도 싹다 도용당하고, 각종 연구활동과 칼럼 등은 우연히 사업이 종료되거나 또 도용당하거나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수교사 인기교사가 되어 살기도 한다.


그러다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최고의 직장도 맞고

누군가에겐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곳이라는 걸.


잠시 나갔던 파견생활은 오히려 야근을 해도 몸이 상하진 않았다. 

학교로 돌아와보니 정말 객관적으로 좋은 환경이지만

'나에게만은' 물음표를 던지는 환경이다.

그렇다고 교육청을 경험해보니 절차나 합리적이라는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곳이라 더더욱 돌아가고 싶지않다.


교사 17년차.


나는 조울증환우가 되었고 허리디스크를 얻었다.

얼마전에도 우리반도 아닌 옆반애가 우리반아이인 자기 절친에게 뛰지마라했다고 교감에게 나를 폭력교사로 신고,

또 애 엄마까지 합세해서 나더러 사과하라고 하고

그걸 듣고서 나에게 만나서 사과할건 하면 어떻겠냐던 교장

그리고 숨이 안쉬어지고 죽을것 같아서 병가를 내겠다니

그러면 선생님들 보결돌려야지 요즘 강사구하기가 힘들다던, 그리고 안했다는 증거를 서면으로 내라는 교감

그 콤보를 얻어맞고 나니 집에가다가 핸들을 틀어버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병가 진단 받겠다 하고 집에왔다. 아, 내가 폭력교사가 아니라는 타임라인별 진술서를 쓰고.

병원에 가서 그동안 묵은 눈물을 쏟아내고는 물었다.


저만 그런가요. 저만 나약한가요. 이런멘탈로 다른직업을 가진다해도 더 힘들거라던데 괜찮을까요.


의사샘은 아니라고 했다 나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파야할 이유가 없는데

단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학교와 관리자가 조직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함

때문이니, 선생님들 그런상황에 자기검열좀 제발 그만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법대로 하겠다고 말해보라고 하시고는

정말 운전하다 죽으면 안되니까 한달을 말씀하시더니

조금 고민하다가 일단 2주 지켜보고 안되면 연장하자고

진단서를 써주셨다.


그리고 뭐든 다른 공부를 하는건 다 도움이 되니까 도전하라고. 다른직장은 적어도 조직원은 보호한다며.


병원을 나오자마자 나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하지않은것에 대해 의심한것인지 물어봤고, 화들짝 놀라며 아니라고 하는 그분에게 나는 지금 무척 힘들고

이상황이 유지되면 법대로 하겠다고 말했더니 병가는 즉시 승인이 났고 놀랍게도 그 구하기 어렵다던 강사님이 두시간만에 구해졌다. 그래서 너무나도 슬펐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이 지난 현재 완전히 슬프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가 능력없는 교사가 되어버린것 같고

그게 아이들과의 관계에선 문제가 없다는게 더 슬프다.

교직도 그들만의 리그가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는것에 비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기저기 자료를 해다 바치는 짓을 십년을 넘게 했다.

담당자와 관리자끼리 정한 답이 있는 회의에 불려가 쓰잘데기 없이 시간을 낭비하다 싸인을 하고 교무실을 탈출할 수 있다.

수업이 중요하지않은 곳에서 물렁하게 보이며 산 죄로

나는 좀 더 타의로 이 교직을 맴돌며 정신승리를 해야한다.

여러 이유로 이제는 한달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큰일나는 나이가 되어버려서이다.


무엇보다 뭔가 적성에 맞지않는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왜 나이 마흔에 알아버린걸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다른선생님들이 행복한 동안

내가 여러 사고에 노출되었던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겠지

라고 생각하니 정말 자존심 상하지만 이걸 받아들여야만 살아낼 수 있는 환경이구나 싶다.


그래서

나는 다만

안전하게 이직하고 싶다.

정년 지나서 부녀회장에 욕심내며 나이들고싶진 않고

계속 평범하게 의미있는 일을 하고싶다.

새 삶에서 행복을 맛보기 전에는 죽지 않고 싶다.

그 돈으로 큰 돈 기부해보고 싶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고, 공부하고, 글을 쓴다.

장담하건대

내가 학교에서 좀 멍청한 적은 있었지만

악하게 살진 않았기 때문에 죽진 않을것이다

그래도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앞에서 수업할수 있고

가족이 있기때문이다.


만약 내가 참으로 어려워진다면

너무나도 평범하며 친절한데 허위사실하나로 교사를 가해자로 순식간에 몰아가는 능력이 출중한 관리자가있다면 그가 높은 확률로 범인이다.

기에 몰린 많은 선생님들께

오늘도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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