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욕구 극복 일지 : 5일 차
메일을 확인하는데 오른쪽 박스 창에 70% 할인 광고가 떴다. 무시하고 지나려는데 작은 글씨가 보였다. 프리미아타 스니커즈 70% 세일.
프리미아타. 이탈리아 신발 브랜드다. 몇 년 전 두 켤레를 샀는데 신을 때마다 편안한 착용감과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굽과 치마 바지 할 것 없이 어울리는 디자인에 지금까지도 잘 신고 있다. 매일 신는 운동화가 아니므로 몇 년이 지났지만 크게 낡은 느낌이 없다.
안 그래도 에어가 들어간 디자인이 새로 나와 눈여겨봐 두긴 했었다. 발렌시아가 트리플S와 나이키 에어의 결합 같은 매력적인 디자인이었다. 살짝 청키 하긴 한데 발렌시아가 트리플S보다 단정하고 가격은 발렌시아가의 반값이라 쇼핑 목록에 넣어뒀었다. 사고 싶은 컬러의 사이즈가 품절이라 재고가 들어오면 사야지 했던 것.
그러다 미팅이나 인터뷰 일을 하러 서울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 버켄스탁과 핏플랍을 번갈아 신는 계절이 찾아왔고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 메일 창 옆에 70% 할인 문구가 뜨기 전까지.
일단 클릭을 했다. 진짜 내가 봤던 그 스니커즈가 맞나 해서 확인 차. 사이트에 연결이 됐고 그 스니커즈가 맞았으며 모든 컬러 전 사이즈가 다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도 파격적인 할인 가격으로. 손을 마우스에 올려놓은 채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화이트 / 사이즈 38, 그린 / 사이즈 38을 왔다 갔다 하며 구매 버튼을 누를까 말까 누를까 말까. 생각 같아서는 두 컬러를 모두 사고 싶었다. 두 켤레를 사도 하나를 사는 것보다 쌌다. 마우스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상상했다. 그 운동화를 신었을 때의 나를. 마침 정말 어울리는 스커트가 떠올랐다. 그 스커트를 입을 때마다 신을 신발이 애매했던 것도 함께.
바로 구매, 바로 구매, 바로 구매.
검정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바로 구매라는 글씨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이건 옷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라는 얍삽한 생각을 하다가 일단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기로 했다.
후, 하
뜨거운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후, 후, 후
후후 불어 천천히 물을 마시면서 신발장을 떠올렸다. 작년 나이키 세일 때 산 에어가 빵빵하게 들어간 운동화와 너무 예쁘지만 신기 불편해 모셔두고 있는 하이탑 스니커즈, 죽을 때 신고 죽을 거라고 큰소리치며 샀지만 지난겨울 단 하루도 신지 않았던 가죽 앵클부츠, 색색의 컨버스, 바깥바람을 쐴 날만을 기다리며 겹쳐져 있는 수많은 스니커즈와 구두와 부츠와 여름 샌들이 들어 있는 신발장.
다시 자리에 앉아 다시 심호흡을 하고 대차게 메일창을 닫아버렸다. 전체 탭을 닫겠냐고 물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눈앞에 70% 세일의 프리미아타 운동화가 사라졌다. 나는 잊기로 했다. 사놓은 걸 잊었듯이 사고 싶은 걸 잊어 보기로.
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 때문인지 끊임없이 다른 아이템으로 쇼핑 욕구가 번져간다. 어느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란 걸 자꾸 기억하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신발을 사는 횟수도 양도 줄었지만 여전히 나는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 적당히. 옷이든 신발이든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