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욕구 극복 일지 : 7일 차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오면 세 쌍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하이, 하니 그리고 얼마 전 구조해 우리와 함께 있게 된 로카.
세 마리의 강아지들이 나를 쫓으며 눈으로 말을 한다.
"저 여자가 일어났군, 언제 양치를 하고 세수하고 나와 현관 거울 앞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까? 빨리 나가고 싶은데, 빨리 준비 안 하고 뭐 하는 거... 어? 어어? 어어어... 뭐야 저 여자 또 스마트폰을 쥐었어. 망했군. 저대로 소파에 누우면 안 되는... 어... 어, 어어어! 이봐! 눕지 마, 눕지 말라고!"
그들이 원하는 걸 너무나 잘 알지만 나도 워밍업의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바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밤새 100%로 충전된 스마트폰을 들고 소파에 휙 하고 누워버린다. 자는 동안 온 연락은 물론 없다. 인스타그램에 눌린 좋아요의 숫자, 가끔 남겨진 다이렉트 메시지 정도가 밤사이의 흔적이다.
마치 중요한 일인 양 그것들을 확인하고 친구들의 피드를 넘기며 좋아요를 누르다 보면 꼭 하나씩 광고 피드가 걸린다. 그동안 나의 관심사, 나의 쇼핑 목록에 부합하는 집요한 알고리즘의 활약. 광고 피드가 나오면 길을 가다 장애물을 만난 것처럼 헉하고 한 번씩 멈춘다.
뭐어? 70% 세이일?
오늘은 무려 90% 세일 광고가 떴다. 그것도 내가 눈여겨보던 하이스트릿 브랜드였다. 패밀리세일이고 (나는 그들의 패밀리가 아님에도 돈을 내어준다면 얼마든지 패밀리가 될 수 있다) 기간은 단 이틀이다. 사려 했던 옷들은 90%까지 세일 하진 않을 것이다. 90%에 부합하는 세일 품목은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디자인이 매우 난해하거나 환영받지 못한 소재일 경우가 많다. 정작 내가 곧 사야겠다 마음먹은 게 운 좋게 세일 품목에 있더라도 90%의 파격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 보인 건 남들도 좋아 보인 것이고 어느 정도 판매가 좋았던 제품이기 때문에 나를 패밀리로 만들려는 패밀리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 옷을 90%까지 할인해주지 않아도 다 살 거란 걸. 이런 걸 알면서도 사이트에 들어간다. 도대체 뭘 싸게 판다는 건가, 혹시 운 좋게 건질 건 없나 살펴보기 위해서.
벌써 20년이 지난 얘긴데 섹스 앤 더 시티 시절, 셀럽과 인플루언서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 21세기 밀레니얼 초반 압구정이나 청담동에서 명품 브랜드의 패밀리 세일이 꽤 자주 있었다. 지금도 물론 있겠지만 훨씬 문턱이 낮아 접근이 쉬웠다. 나 같은 변두리 기자들도 업계의 정도를 듣고 알음알음 찾아가 연예인 언니들과 함께 쇼핑을 하곤 했다. 그곳에 명품 브랜드의 시그니처 모델은 없어도 브랜드의 로고가 찍혀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과 신발, 의류 등을 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사실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안 사면 손해 볼 것 같은 느낌에 할부의 할부를 해가면서 이것저것 손에 잔뜩 들고 나온 기억.
90% 세일 사이트에 들어가라고, 피드 아래 '더 알아보기' 칸이 나를 자꾸 유혹했지만 나는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1cm 두께로 바르고 반바지에 땀에 젖어 백번은 빨았을 오천 원 주고 산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챙모자를 썼다. 세 쌍의 눈은 비로소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래, 그냥 처음부터 눕지 말고 나가지 그랬어.
꾸짖는 건지 위로하는 건지 세 마리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극뽁을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