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욕구 극복 일지 : 8일 차
즐겨찾기로 등록해 놓은 인터넷 쇼핑몰을 한 바퀴 쭉 둘러보는 것이 일상 루틴 중 하나였다.
몸을 쓰는 모든 것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게 워밍업인데, 뇌도 몸의 일부이다 보니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쓰기 전에도 워밍업이 필요하다. 인쇄를 앞두고 전달된 클라이언트의 급한 수정 요청이 아니라면 노트북을 켜고 바로 워드 창을 여는 일은 거의 없다. 당대 이름을 날린 유명 작가들은 앉자마자 워드를 켜는 건가? 나는 그걸 못해서 당대 이름을 날리기는커녕 반짝 베스트셀러도 못 내는 건가? 이 따위 쓸데없는 자기 비하를 하면서도 끝끝내 워드 창을 바로 열지 않는다. 마우스 위의 오른손은 의지를 앞질러 어느새 크롬 창을 두 번 두드린다. 열려랏! 인터넷 세상!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일단 메일을 둘러본다. 메일은 포털마다 하나씩 있는데, 일을 위한 메일, 쇼핑을 위한 메일, 그 외 잡다한 소식을 받는 메일이다. 사실 일 관련 메일 빼고는 시간을 들여 매일 체크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한다. 혹시나 신상품이나 세일 소식을 놓칠까 공구 정보를 지나칠까 아주 꼼꼼하고 야무지게 확인한다.
대부분 메일 확인 작업이 끝나고 나도 뇌는 달아오르지 않는다. 얄미운 마우스 위 오른손은 여전히 워드를 클릭할 생각이 없다. 이제 뉴스를 읽는다. 매일 펼쳐지는 매번 당황스러운 이야기들을 읽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속 친구들의 소식을 훑는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겠다고 앱을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앱을 지워버린 시도가 무색하게 매일 아침 다정하게 친구들의 일상에 좋아요를 눌러준다.
이렇게 하고도 아쉬워서 결국 쭉 한번 모아 놓은 좋아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업데이트 소식을 확인한다. 오늘은 뭐가 올라왔나, 뜻밖의 세일이 있는 건 아닌가 살펴보다 보면 꼭 사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제품들이 눈에 띈다. 갑자기 기본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톡톡한 흰색 무지 티셔츠를 사야겠거나, 꾸안꾸 필수 슬랙스가 나에게만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급해지면서 관련 제품들을 여기저기 다 뒤져본다. 비싼 것부터 싼 것까지 그중에서 가격비교를 하고 비싼 것을 샀을 때의 장단점, 싼 것을 샀을 때의 장단점을 따져보며 서치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결국 택배 발송 시간 직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기로 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둔다.
이쯤 되면 워밍업이 끝이다. 긴 시간 인터넷 바다에서 격렬하게 헤엄을 치고 났더니 갑자기 에너지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얼른 커피를 내리고 단 것을 가져와 옆에 놓고 먹으며 의류 쇼핑몰을 돌며 흥분했던 가슴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워드 창을 열지만 눈이 너무 말라 뻑뻑해져서 바로 원고를 쓸 수 없다. 몸에 열 내다 지쳐 정작 본 운동을 포기하는 사람처럼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눈을 감는다.
딱 십 분만 있다가 해야지. 십 분이야 딱.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아까 장바구니에 넣어 놓은 흰색 기본 티셔츠 중 무얼 선택할지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며 고민을 한다. 어찌나 심사숙고하는지 원고는 언제 쓰나 같은 고민이 치고 들어올 틈이 없다.
옷 사지 않기로 한 지 8일 차. 이 루틴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그렇다고 바로 워드 창을 열진 않는다. 이젠 쇼핑몰 대신 브런치의 글쓰기 창을 열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데 의의를 둔다. 소비하지 않는 것이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