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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30. 2021

사지않고 쓴다

쇼핑 욕구 극복 일지 : 9일 차

브런치 작가가 된 건 아니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진 건 꽤 오래전 일이다. 네 번째 에세이를 준비할 때였다. 육아와 여행을 테마로 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편집자는 나에게 브런치를 권했다. 그때 나는 브런치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블로그에 올리듯 글을 쓰면 되는 줄 알았다. 편집자와 미팅을 마치고 와 바로 브런치에 들어갔다. 


변화를 주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달라지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과 절박함이 나를 지배하던 때였다. 벼랑 끝에서 떨어질까 봐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버티던 시간들. 나는 힘을 풀고 뒤를 돌아 다시 들판으로 숲으로 뒤돌아 뛰어가고 싶었다. 비록 지나온 길이라도 처음으로 돌아가면 벼랑이 아닌 다른 방향을 찾을 것 같았다. 비장하게 입장한 브런치에는 눈을 씻고 봐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여기저기 들어가 보고 눌러봐도 소용없었다. 나중에서야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괜찮았다. 기존 포트폴리오도 있고 꾸준히 하고 있는 SNS도 있고 글밥으로 먹고 산 게 몇 년인데 금방 되지 않을까? 자신만만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날의 충격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세계기록을 가진 선수가 올림픽 예선전에서 떨어진 걸 예로 들면 너무 과몰입일까? 


절치부심 다시 각 잡고 도전해 결국 브런치 작가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또 뭘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쓰다 서랍 속에 그냥 넣어 놓기도 하고. 모른 척 살기도 하다가 얼마 전 꼭 공유하고 싶은 게 생각났고 그게 바로 옷을 사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결심을 할 때마다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절실했다. 특히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갈 때 그랬다. 쇼핑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처음은 아니다. 수차례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했다. 욕망의 시대에 소비하지 않겠다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적었고 그걸 핑계로 자주 무너지곤 했다. 


허락이 떨어져야 쓸 수 있는 다른 인터넷 매체보다 조금 까다로운 이 지면에 이왕이면 누군가의 외로운 길에 동무가 되어줄 글을 쓰고 싶었다. 풍요의 홍수에 소중한 것들을 떠내려 보내고 있는 이 시대에 구명조끼 같은 글은 너무나 많다. 환경 전문가들의 경고와 정교한 예측이 실린 텍스트도 많지만 나 같은, 평범한 구성원이 삶 속에서 조금씩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벌써 9일 차이다. 이제 조금 브런치에 적응을 해 나아가는 것 같다. 소제목에 대주제를 넣고 큰제목은 항상 같은 걸로 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키워드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뭐든 시작해보는 게 중요하다. 글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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