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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31. 2021

우리를 쓰레기로 만들지말아 주세요

쇼핑 욕구 극복 일지 : 10일 차

덴마크 기상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7일 하루 동안 그린란드에서 85억 t 분량의 얼음이 녹아내렸다고 한다. 85억 톤은 미국 플로리다주 전체를 5㎝ 가량 물로 뒤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플로리다주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크니 85억 톤이면 우리나라 전역을 물로 덮을 양이 단 하루 만에 녹아내렸다. 


오늘도 날은 습하고 덥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씨다. 몇 년 전 군의 지원을 받아 설치한 태양광이 있어 부담이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매일 일정 시간 에어컨을 켜고 살아야 한다는 건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이 더운 날에도 마을 이곳저곳은 공사로 분주하다. 막 정착했던 십 년 전과는 지형이 달라졌다. 우리 집 앞만 해도 산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매일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이 와서 산을 깎는다. 무성하던 숲이 사라지고 황토색 속살을 훤하게 내놓은 채 볼품없어진 산이 안쓰럽다. 아직도 개발이 발전의 지표가 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작년에 환경운동하시는 윤호섭 교수님을 인터뷰했었다. 어느 날 옷장에 비슷비슷한 흰색 티셔츠가 60여 장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교수님은 그날로 그 티셔츠를 다 꺼내 들고 인사동으로 나가 그림을 그려 나눠줬다. 자동차도 팔고 버스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은퇴 후엔 냉난방을 하지 않는 작업실에서 계절을 견디며 작업하신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은 어떻게 나실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교수님은 탄소 발생 문제에 대한 심각성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기로 결심하셨다고 했다. 2000년 이후 비행기 이용을 하지 않으셨는데 미국 어느 대학에서 매년 전 세계 단 한 명의 명사에게 하는 강연 초청이 왔는데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하다 수락하셨다고 했다. 

벽지의 아이들에게 환경 이야기를 하러 가실 때도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여러 번 갈아타고 가신다. 매년 녹색여름 전을 주관하시고 전국에서 참여하는 다양한 환경 작품들을 전시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 실천하는 모습도 대단했지만 아직도 충격적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건 교수님 작업실의 담벼락이었다. 

약간 무너진 채로 이런저런 화분들이 놓여 있던 담벼락. 유명한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교수님의 작업실을 부수고 번듯한 건물을 새로 올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 녹색여름 전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새로 지어볼까 하셨다고. 그런데 철거업체가 부수어 폐기물이 된 담벼락이 트럭에 가득 실리는 걸 보고 안 하겠다고 하셨단다. 그 쓰레기를 보고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고. 


인테리어, 공간의 재탄생. 물론 너무 낡아 불편할 지경이거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없는 상태라면 당연히 바꿔야 하겠지만. 멀쩡한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 실려 나가는 건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북유럽 스타일이 한창 유행이더니 이제는 미드 센츄리 스타일이 유행이라며 북유럽이 언제 적 이야기냐는 말을 화려한 연예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않았으면. 그 말 한마디에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던 우리 집이 초라해 보이거나 낡은 것을 간주되지 않았으면. 누구라도 어제까지 기대어 앉던 담벼락이 쓰레기가 되는 것에 가슴 아파했으면.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닌가? 물질의 풍요를 벗어나 이제는 나은 미래를 위해 다른 길을 찾아봐야 때가 아닌가 싶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내가 하는 실천은 고작 당장 옷을 사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도 이제 겨우 열흘이 됐다. 이제 쓰레기가 아니었던 쓰레기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을 추가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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