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욕구 극복 일지 : 13일 차
잠깐 우체국에 다녀오느라 시내에 다녀왔다. 시내라고 해야 면소재지의 1km가 조금 넘는 메인 스트릿이 전부다.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수협, 마트 두 곳, 분식집, 치킨집, 피자집, 중국집, 안경점, 꽃집, 철물점, 떡집, 편의점, 학원, 롯데리아와 파리바게트와 카페와 호프집과 밥집들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필요한 것들이 해결 가능하니 우리 면 사람들에겐 '시내'다.
방학에 코로나에 더위까지 겹쳐 마을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책방은 시내의 입구 코너에 있는데 하루 종일 사람이 거의 지나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모두 마트가 있는 시내 중간쯤에 차를 세우고 일을 보기 때문이다. 우체국은 마트 바로 건너편이라 택배를 보내고 잠깐 마트에 들렸다. 고요한 거리와 대조적으로 마트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방역 단계가 올라가도 여행객들은 끊이지 않는다. 한편으로 다행이고 또 한편으로 조금 걱정이다.
도시에서 바쁘게 일하고 일 년에 길지 않은 휴가를 보내러 온 사람들. 마트 안의 공기는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큰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간은 음계로 치면 가온 도 정도다. 거슬리지 않는 편안한 소리. 누구나 낼 수 있는 음. 여행객들이 붐비는 곳의 공기는 두 옥타브 정도 높아져 있다. 마스크 밖으로 그들의 들뜬 감정을 숨길 수 없다. 고기를 사고 술을 사고 곁들일 채소와 장을 사고. 비슷한 식재료들이 그들의 웃음과 함께 실려 나간다.
고작 우유 하나 치즈 한 봉을 샀는데 줄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 명절이 아니면 겪지 않을 일이다. 어렵게 계산을 하고 나와 집으로 오면서 나의 삶이 보편적 삶과 많이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안에서 이웃들과 지낼 때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는데 삶의 최소한의 면을 사용한다. 뚝 떨어져 살고 있고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책방이 붐비는 일도 없어 가능하다. 비교적 느슨한 삶이다. 그러니 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그걸 지켜 나가기도 수월하다. 매일 불특정 다수와 마주치고, 특정한 사람들과 긴 시간을 보내며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일을 가졌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경이 얼마나 문제인데, 지구가 썩어가고 있다고, 실천해야 해... 누군가에겐 그 말조차 폭력일 수 있는 일. 아무리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의견이라고 해도 조심해야지, 마트에서 놀러 온 외지 사람들을 잔뜩 만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