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t
거지가 뱉은 침
미대 수업은 다른 과보다 수업 시간이 긴 편이다.
실기를 하는 날도 있지만, 보통은 크리틱 중심이라 수업을 마치고 나서야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날이라도 기본적으로 작업량이 많아 집에서 하기엔 무리라, 거의 매일 실기실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보니 막차를 타고 하교하는 일이 많았다.
시간이 늦어지면 서울역 안에 노숙자들이 많아진다. 그들은 가끔 아무에게나 삿대질을 하며 욕을 하기도 한다. 모두는 별 탈없이 지나가는데, 나는 꼭 그 욕을 맞았다. 밤늦게 귀가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축돼 있었기에 그런 말은 더 비수처럼 꽂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하면서 학교를 다녀야 하지? 왜 우리집은 멀까. 왜 우리 과 수업은 4시간이면서 2학점만 주는걸까. 왜, 나는 이런 욕을 이 시간에 여기서 들어야 하는가.'
얼굴도 기억 나지 않는 노숙자때문에 하루의 끝은 엉망이 되곤 했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타려고 건대입구 거리를 지나는데, 구걸하던 할머니가 멀리서부터 욕을 퍼붓더니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 침을, 하필 내가 맞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어머.'하며 날 피했다.
집에 가는동안 그 일을 곱씹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였고, 할머니는 그냥 화가 나 있었고, 나는 그저 그 옆을 지나갔을 뿐이다. 누구라도 될 수 있었던 타깃이 나였을 뿐인데, 나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왜 또 나지?’
살면서 종종 그런 순간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자꾸 나를 골라 겹치는 기분. 그게 우연이든 아니든, 반복되는 감각 속에서 나는 묻고 있었다.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저 할머니는 왜 나한테 침을 뱉었을까.
나는 침을 뱉고 싶게 생긴 얼굴일까.
이게 무슨 말이람, 침을 뱉고 싶게 생긴 얼굴이라니.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그때는 실제로 그런 고민을 깊게 했다. 그 물음들은 오래도록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문장이 되어 떠오른 것이었다. 누구도 내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데 어떤 종류의 설움은 눈에 띄지 않게 쌓인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사소한 폭력에 덧입혀져 돌연 얼굴을 한다. 이 날이 그날이었다. 단순한 억울함이 아닌 그동안 스쳐 지나간 모든 사소한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온 순간이었다.
'어떻게 너가 내게 그럴 수 있어?'
상처 받았다.
연인에게나 할 법할 말을 지하철을 가는 내내 얼굴 모르는 할머니를 마음 속에 붙들고 물었다. 나를 피해 지나친 사람들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까 그 여자 둘. 뻔히 봐놓고 어떻게 그냥 갈 수가 있지? 내가 더럽단 듯이 나를 피했지. 침 묻은 이 바지 벗어서 그 여자들한테 던질걸.'
명확한 가해자가 없으므로 눈 가린 채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표적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집은 가까워지고, 텅 빈 막차는 고요했다.
질문은 돌고돌아 나를 향했다. 나는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나름대로의 자구책이었다.
'욕을 더 연마하면 나도 맞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그림자같이 까만 옷만 입고 다닐까.'
'내 얼굴이 만만하게 생겼나.'
성형 수술까지 고려하는 스무 살이었다.
어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이었다. 무작위로 일어난 일에 내게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쉬웠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잠재우려 여러 경우의 수를 짜봤지만, 현실에서 내 각본에 끼어드는 모든 것은 복병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거푸 일어나면 회로가 고장나듯 혼란스러워졌다. 왜 나만 계속 이런 일들을 겪는 건지 억울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금세 무너졌다. 감정을 다루는 힘이 부족했고, 낯선 상황들이 쌓인 탓이다.
결국 삶은 어쩌지 못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아무리 준비해도 뜻밖의 일은 계속 찾아온다. ‘왜 나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찾기 어렵다. 그 질문을 멈추고 나서야 나는 내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버티는 것도 방법이지만, 때로는 피하는 것도 필요하다. 만약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면, 꽂힌 화살을 즉시 빼서 버릴 수도 있다. 곱씹을 필요 없다. 그것들은 그저 주변에서 날아다니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닿았을 뿐이고, 우연의 희생자가 나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어디서 생긴지 모를 상처에 무너질 필요 없다.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