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인생, 보행기 때문에 경찰서에 갈 뻔

[연재]반지하에서 카페 같은 집까지

by 라니

(02) 다섯 살 인생, 보행기 때문에 경찰서에 갈 뻔

[연재]반지하에서 카페 같은 집까지

어느 날 밤, 불을 끄고 자기 전 불현듯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 어릴 때 우리 집 방바닥에 개미가 살았다?”

“개미? 바퀴벌레 아니고 개미?”

“바퀴벌레는 당연한 거고, 개미! 누워있는데 기분 나쁜 소리가 나서 방바닥을 들춰보니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거야. 대박이지!”

“그렇네. 그런데 왜?”

“지하 방이라서 아마 습함의 절정이지 않았을까 해.”

남편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릴 적에 버스에서 살았다?”

“버스? 버스에서 어떻게 살아?”

“사실 나는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안 나지만, 삼 남매를 막 낳고 엄마 아빠가 돈이 없어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버스에서도 지냈다고 들었어.”

“아, 그렇구나. 정말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 나 다섯 살 때 어떤 아줌마가 나를 경찰서에 끌고 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경찰서?”



갑자기 시작된 우리의 ‘가난과 고난, 불행 3 총사’ 이야기. 가난했던 시절을 잊고 살다가, 이제 좀 살 만해지니 그런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다섯 살 인생 경찰서 썰

어느 날, 회사 동료들과 맛있는 아이스크림 ‘빵빠레’를 엄청 맛있게 빨아먹는 간식 시간. 누군가 말했다.

“나 이거 진짜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맞아 맞아. 빵빠레는 우리나라 투게더 아이스크림과 양대산맥 아니냐?”

그렇게 즐겁게 이어가던 찰나, 내가 덧붙였다.

“나도 빵빠레 좋아해. 나 어릴 적 엄청나게 혼나고 나중에 엄마가 사준 아이스크림이야. 내가 그때 혼난 거 생각하면…” 갑자기 신나게 웃다가, 빵빠레 추억을 생각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눈물이 맺혔다. 정말 너무 순식간이라서 웃기지도 않았다. 멈춤. 일제히 정적이 흘렀다.




‘발바리’라는 별명의 시초

나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아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파출소에서 전화가 와서 “애기 여기 있다”라고 하면, 엄마가 퇴근하고 찾으러 오셨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말씀하신다.

“혜란이 너는 남들에 비해 되게 늦게 걸었어. 맨날 기어 다니고..(안쓰러운 투로 말씀을 잇다가)

그런데 한번 걷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싸돌아 다녔어.”

차분한 우리 엄마의 이 이야기는 꺼낼 때마다 나의 웃음벨이 돼버렸다.

나를 ‘발바리’라고 불렀다. 하도 싸돌아다닌다고. 지금의 공간투어 좋아하는 취미의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보행기와 내리막길

5~6세가 되었을 때, 동네 구경하는 걸 즐겼다. 시간은 많았고 부모님은 거의 집에 계시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은 내리막길 바로 앞, 작은 동네 슈퍼 앞이었다. 단칸방이었고, 지상이었지만 특별한 구조는 없었다.

문을 열면 바로 신발을 벗고 방이 나오는, 그림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집.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애기들이 타는 보행기가 버려져 있었다. 그렇게 헌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왜 버렸을까? 내 머릿속엔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 갖고 친구들이랑 내리막길에서 타고 놀아야겠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순서를 번갈아가며 신나게 보행기를 타고, 뒤에서는 잡아주었다.




경찰서에 갈 뻔한 사건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디선가 파마머리 아줌마가 나타나더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윽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야! 너 이 보행기 훔쳐갔지? 쬐그만한 게 어디서 이런

도둑질을 배워가지고. 이거 우리 아기 거인데, 안 되겠다. 경찰서 가자! 너 같은 건 혼나야 돼. 이리 와!”

“아줌마, 어엉… 왜 그러세요? 버려있던 거 주워온 거예요.”

‘쿵쾅쿵쾅!’ 요동치는 가슴에 난생처음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줌마는 무서웠고, 친구들은 얄밉게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대로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주워온 거 좋.다.고 같이 탈 때는 언제고, 왜 다들 저렇게 가만히 있는 거지?”

아줌마의 흥분은 차츰 한 템포 차분해졌고, 가자는 장소는 경찰서에서 우리 집으로 바뀌었다.

집이 멀지도 않았고, 바로 문을 열면 나오는 집.

‘아뿔싸!’ 늘 일하시러 가셔서 집에 안 계셨는데 가는 날이 장날임을 깨닫는다. 엄마는 낮잠을 자고 계셨고, 자초지종을 들으시고 죄송하다고 하셨다.

한눈에 봐도 우리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줌마는, 우리 엄마에게 훈계를 하며 떠났다. 같이 가난했어도 서열은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아줌마가 가고 난 뒤, 나는 빨간 망치 빗으로 맞았다. 죄송하다고 빌고 빌었고, 그날 밤 엄마는 내게 빵빠레를 사주셨다.




보행기 때문에 경찰서에 갈 뻔했던 나의 다섯 살 인생

보행기 때문에 경찰서에 갈 뻔했던 나의 다섯 살 인생,

빵빠레가 불러온 나의 어린 시절,

‘발바리’라는 별명의 시초가 되어준 사건!

오늘은 웃지만, 과거의 내 울음과 가끔씩 빵빠레를

먹으면 어김없이 그 웃픈 기억이 떠오른다.



고마운 현실, 현재의 사람들

회사 동료가 말했다.

“뭐, 그런 아줌마가 다 있냐. 진짜 못됐다.”

남편도 덧붙였다.

“아줌마가 잘못했네. 그 애가 뭘 안다고~ 무서웠쪄?”

감사하다. 무조건적인 내 편들. 사실 그거 말고는 다 큰 나를 위로할 방법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당시에 다들 없이 못 사는 시절이었다.

애기 보행기를 잘 빨아 햇볕에 깨끗하게 말려서 사용하려 했던 그 엄마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지금은 아줌마의 입장도 이해된다.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에 방문하고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그곳의 기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 옛날 골목의 어두운 분위기도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있다.


아련하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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