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나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바닥감촉이 딱딱해서 매우 낯설었다. 천천히 돌아누워 천장을 바라보자 그 순간 목뒤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아, 내가 또 정신을 잃었던 거구나! 최대한 천천히 몸을 돌려 나무늘보처럼 일어났다.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잿빛이 되어있었다. 나는 서둘러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시간을 잠시 되돌려 보았다. 침대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벌떡 일어났고, 다섯 걸음쯤 걸었을 때 어지러웠다. 테이블에 잠시 걸터앉아 앞으로 엎드린 채로, “아! 어지럽... “까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그 이후에 기억이 없다. 예전에도 기립성 저혈압 같은 증상은 몇 번이나 있었다. 나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서둘러 잠에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손목에 비틀린 듯한 통증은 있지만 뼈는 문제가 없는 듯했고, 무릎에 멍이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정도였다. CCTV라도 달았어야 나 혼자 쓰러지는 장면을 볼 수 있을 텐데 나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혹시 다른 문제가 없나 살펴보던 중 경미한 두통이 느껴졌다. 두피를 여기저기 만지다 보니 이마 위쪽 두피에 긁힌 자국과 타박상 통증이 느껴졌다. 아니 도대체 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테이블을 보니 뒤쪽으로 밀려 있는 게 내가 아마도 테이블을 밀면서 바닥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면서 머리를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치고 바닥으로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무슨 현장검증을 하듯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나갔다.
이틀 뒤까지도 경미한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모를 두개골 골절이나, 뇌 손상이 우려되어 병원을 방문했다. 3일간 수많은 검사를 했다. 결과를 들으러 간 날, 선생님은 나의 병명이 자율신경계 실조증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부교감 신경이 지나치게 우세한 상황이라 좀 무기력 해지기가 쉽다고 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을 하셔야 해요, 일주일에 2~3회는 숨이 찰 정도의 유산소 운동을 하시고요, 근력 운동도 병행하세요. 스트레스 관리도 하시고요.” 겁주신 거에 비하면 치료법은 엄청 싱거웠다. 그 정도 이야기는 나도 할 수 있겠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지난겨울을 반추해 보았다.
유독 추운 겨울이었다. 올겨울 끝은 미련이 길기도 길다 하며 연일 이어지는 한파 뉴스만 들려오던 때였다. 매일 하던 산책도 추위에 져버린 지 오래다. 이런 날씨와 맞짱 뜰 용기 같은 건 애초에 나에게 없었다. 집에서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거라곤 뜨개가 전부였다. 하루하루 뜨개에만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그땐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잘 몰랐다. 뜨개를 하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겨우 내내 내가 완성한 뜨개옷을 주섬주섬 세어봤다. 이렇게 많았구나! 나는 그때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뭐라도 만들어 내야 살아있음의 이유가 있다고 느껴졌다. 출근할 필요도 없는데 3시 반에 눈이 떠지던 시절이었다. 막막한 시간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기력 해지는 나에게 어깨를 걸어 일으키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 중에서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단어는 ‘무기력’이라는 단어였다. 나는 그 단어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싶었던가? 그런데 내 모든 신체가 마! 침! 내! 무기력해졌다고요??
뜨개를 하다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친구 H 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목숨 걸고 하지 말고 쉬엄쉬엄 뜨면 되잖아 “. 나는 그녀에게 너는 뜨개를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는 게 안 되는 나라는 인간은 뜨개조차 '적당히'가 안되었다. 또 다른 친구 J는 우리 나이에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하는 게 있는 것조차 부럽다는 말을 했다. 나는 뭐든지 객관적으로 '적당히'가 되는 그녀가 더 부러웠다. 봄이 되고 슬로 러닝을 시작했다. 식사도 거르지 않고 챙겨 먹는다. 잠도 가급적 규칙적으로 자보려고 노력한다. '적당히'가 안 되는 나는 오늘도 뜨개를 하려고 체력을 키워나간다. 덧붙여 소망하자면 언젠가 동네에서 제일 뜨개 잘하는 할머니가 되었을 즈음에는 내 인생도 뜨개도 중용을 이루어 내기를 바라본다. 넘치지 않고 행복한 뜨개를 내내 하고 싶다. 넘치지 않고 건강한 삶에 부디 도달하고 싶다.